최근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문제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얼마전 한국경제신문에 실린 시론을 접하고 몇가지 견해를 밝힌다.

''고물가 주요 원인의 하나인 높은 농산물가격은 떨어지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경영진에게 임금인상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높은 농산물가격의 인하를 위해 수입개방을 요구해야 할지 모른다''는 주장이 있다.

과연 현재 농산물가격이 높고 고물가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는가.

1995∼2000년 기간중 소비자물가는 21.5% 상승한 반면, 농가판매가격의 상승률은 9.6%에 불과하다.

더욱이 UR 농산물협상 타결 이후 수입증가로 인해 과실과 채소 등 청과물의 농가판매가격은 같은 기간중 오히려 9.5% 하락했다.

게다가 IMF 여파 등으로 공산품에 대한 농가구입가격은 같은 기간중 21.2% 올라 농가교역조건은 크게 악화됐다.

이에 따라 도시근로자가구와 농가간의 소득격차는 94년 99.5%에서 99년 83.6%로 급격하게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올 1월 쇠고기 시장이 개방됨으로써 쌀을 제외한 모든 농산물에 대한 수입개방이 이루어진 상태다.

개방속도 또한 농민들이 부채누적을 하소연하고 심지어 자살까지 택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소비자 역시 99년 ''한국갤럽''의 도시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가 ''농산물시장은 이미 지나치게 개방됐다''는 의견을 보였으며, 84%는 ''UR 협상때와 달리 이번 WTO협상에서 우리 정부는 모든 역량을 집중해 농산물시장의 추가 개방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결과도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이 우리경제에 별 도움이 되지 않거나 소비자가 얻는 몫보다 생산자인 농민이 잃는 부분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시론은 과장된 논리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체결의 당위성을 옹호하고 있다.

유사한 논리를 전개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우리 농업의 경쟁력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물론 현재의 농업 상태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상당부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경쟁력이란 노력 및 투자 정도에 따라 얼마든지 변한다.

UR 협상을 계기로 충분하지는 않지만 농업에 대한 투자와 관심이 확대되면서 서서히 경쟁력을 회복하고 있는 단계에 있다.

좁은 농지면적으로 인해 토지를 많이 필요로 하는 부문은 경쟁력 제고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자본 및 기술집약적인 부문, 예를 들어 과수 시설채소 및 화훼부문은 빠른 속도로 경쟁력을 회복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과실류부문에 관한 한 세계 최고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칠레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다면 그 결과가 어떠할지 예상하기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제 막 경쟁력이라는 새싹을 틔우기 시작한 우리의 포도 사과 배 키위 등 과수부문이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다.

또 칠레산 수입과일과 대체관계에 있는 단감 감귤 및 수박 참외 방울토마토 등 과채류가 2차적인 피해부문이 될 것이다.

이는 다시 과수 및 과채류에서 탈락한 생산자원이 채소류 화훼류 및 특용작물로 전환되어 이 부문에서 생산과잉 및 가격폭락으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자유무역협정 체결은 우리 농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부문을 초토화시키게 될 것이다.

동시에 다른 수출국들도 동등한 수준의 개방을 요구하게 되어 WTO협상과정에서 우리의 입지는 더욱 축소돼 급기야는 우리 농업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칠레의 공산품 관세율은 2000년 9% 수준에서 2003년에는 6%, 2010년에는 완전 철폐될 예정으로 있다.

몇년만 기다리면 공산품 수출이 순조롭게 이루어질텐데, 우리 농업의 존립을 담보로 협정체결을 서두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농업은 봉이 아니다.

경제대국인 일본이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함에 있어 농업부문만은 예외로 하고 있음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생명의 근원이며,우리 사회를 오늘의 수준까지 키워준 농업의 은혜를 망각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