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주먹,피와 땀,그리고 숱한 좌절끝의 성공.이국 만리 해외에서도 배달민족의 혼을 불사르며 부와 명예를 품에 안은 해외동포들이 많다.

기업인,회사중역,법률가,컨설턴트 등등.해외동포 비즈니스맨들의 성공스토리를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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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 74가와 브로드웨이가 만나는 사거리는 맨해튼 황금상권중 하나다.

바로 오른쪽에 센트럴파크가 있고 조금만 내려가만 링컨센터 ABC방송국 줄리어드스쿨등 문화공간이 즐비하다.

주택단지에는 돈많은 유태인들과 방송 연예인등 유명인들이 많이 산다.

이 사거리에는 "맨해튼 최고"가 두개 있다.

하나는 고급 식품스토어인 "페어웨이(Fairway)".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야채 과일등 질과 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다른 하나는 이 페어웨이와 브로드웨이를 사이에 두고 있는 비컨와인스&스피리츠(Beacon Wines & Spirits).와인전문 도소매상으로 매장면적이나 갖고 있는 와인종류가 맨해튼 최고를 자랑한다.

뉴욕 사람들에게 "맨해튼 최고"란 말은 세계 최고란 말의 겸손한 표현이다.

1백20평 남짓한 매장에는 전세계 각지에서 생산되는 3천여종의 와인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다.

마이클 더글러스,킴 베신저등 유명 영화배우들이 즐겨찾기도 하는 이 상점의 주인은 바로 정지영회장(67).마피아와 유태인들이 장악하고 있는 만만치않은 와인업계에 뛰어들어 최고가 된 한국인이다.

와인도소매상은 다른 업종과 마찬가지로 자금력이 중요하다.

특히 맨해튼에선 그렇다.

한달 결제가 관행인 와인업계에서 10일 결제를 한번도 어겨본적이 없는 정회장의 무기도 신용과 자금이다.

은행돈을 한푼도 빌려쓰지 않고 있는데서도 그의 자금력을 엿볼수 있다.

그렇다고 그가 자금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정회장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뉴욕에 온 것은 지난 73년.불혹의 나이인 꼭 40살때였다.

아내와 어린 아들 딸을 데리고 왔지만 가진 것은 두 주먹뿐이었다.

친구가 경영하는 야채가게의 쓰레기를 치워주는 일부터 시작했다.

끼니를 거르기는 다반사이고 지하철값 50센트를 아끼려 왠만한 거리는 걸어다녔다.

하지만 야채가게 종업원으로는 돈을 모으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선 길이 맨해튼의 택시운전사.밑천없는 이민자들이 몸으로 때우며 뉴욕을 배우는 직업이다.

택시운전중 틈나는 대로 한국 기업들이 팔다가 남은 태권도복등 의류를 팔고 다녔다.

밤에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했다.

직업 3개를 동시에 가진 셈이다.

택시를 몰며 그는 세가지를 얻었다.

주머니에 어느정도 돈을 모았고 미국의 문화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거리에 유동인구가 많고 어느 동네가 인심이 후하다는등 맨해튼에 대한 나름대로의 통계분석이 이뤄졌고 그것은 무형의 사업밑천이 됐다.

그가 첫 사업을 시작한 곳은 64가와 2번가에 만나는 곳."통계"적으로 가장 팁을 많이 주는 손님들이 타고 내리던 동네다.

택시운전사로 번 1만달러와 빌린 돈 2만달러를 보태 야채가게를 시작했다.

전략은 성공했고 미국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손쉽게 시작할수 있는 야채가게는 그만큼 경쟁도 심했고 사업을 키우는데 한계가 있었다.

야채처럼 썩지않고 아무나 모방할수 없는 아이템은 없을까.

기왕 사업을 하려면 최고가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미국 주류사회와 정면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와인업의 선택은 그렇게 이뤄졌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86년 야채가게를 정리하고 86가에 있는 허름한 와인스토어를 매입했다.

매장의 형태는 물론 상품까지 완전히 개조하면서 맨해튼 와인업계에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92년 74가의 초대형매장을 인수,지금 두 곳 모두 영업을 하고 있다.

최고가 되는 길을 쉽지않았다.

가게에서 기거하며 자는 시간을 빼곤 일뿐이었다.

정직 친절등 미국적인 가치는 기본.여기에 한국적인 경영기법까지 가미됐다.

직원들을 단순한 종업원이 아닌 식구처럼 대접해주는 것.와인업을 시작할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했던 크리스 루드니는 정회장이 대학졸업때까지 학비를 다 대주고 결혼때는 집까지 사줬다.

지금은 매니저로 정회장을 대신해 점포관리를 총괄하고 있다.

다른 종업원들도 의료비는 물론 자녀들의 학비까지 챙겨준다.

그러니 좀처럼 떠나는 직원이 없다.

그는 얼마전 은퇴를 대비해 캘리포니아 산호세 인근에 80가구짜리 마을을 하나 샀다.

따뜻한 곳에서 마을을 관리하는 게 나이들어 소일거리로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페블비치의 유일한 한식당인 "가산"도 그의 소유.팔아버리면 다시는 한식당이 들어서기 어려울 것 같아 그냥 유지하고 있다.

은퇴를 대비하곤 있지만 그의 마음 아직 청춘이다.

와인수입업체를 만들어 뉴질랜드에서 직접 와인을 들여오는 계획부터 시작해 할일은 아직 태산같다.

최고의 길은 끝이 없는 모양이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