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주 < 김영사 사장 pearl@gimmyoung.com >

우리 회사는 가회동에 있다.

사무실에서 일하다 고개만 돌리면 창밖으로 올망졸망 한옥지붕이 보이는 곳,골목 중간중간에 층층계단이 숨은 그림처럼 박혀있는 곳이다.

일명 ''북촌''이라고도 한다.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는 동네를 말한다.

가회동 재동 계동 안국동 원서동 사간동….

지금 같으면 하나의 지명으로도 충분할 만큼 좁은 지역인데 동네가 많기도 하다.

그만큼 예전의 공간 분할 규모는 지금과는 차이가 있었다.

이곳에 ''화동''이라는 동네가 있다는 것도 북촌에 온 지 한참 지나서야 알았다.

북촌은 조선시대 고관대작들이 많이 살았다는 유서 깊은 동네다.

궁과 궁 사이에 자리잡고 있어 서울의 명당이라고 불렸다.

지금도 바로 이웃에 청와대가 있으며 광화문이나 종로 명동 정도는 가뿐하게 걸어서 갈 수 있는 서울의 한복판이다.

하지만 서울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가장 서울답지 않은 별천지 같은 곳이다.

우선 간판을 보자.

참기름집 떡방앗간 구멍가게….

네온사인이 깜빡이는 입체간판이 아니라 양철 위에 붓글씨체로 촌스럽게 쓴 양품점 간판도 있다.

또 1960∼70년대에나 있었음직한 ''가회이용원''(이발소) 간판도 보인다.

그뿐인가.

까만 한옥지붕과 노란 나무대문,꼬불꼬불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담 밖으로 들리는 식구들의 얘기소리,유유자적하는 토박이 노인들,오랫동안 이웃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연출하는 특유의 정겨움….

이곳에서 15년 가까이 일하다 보니 나도 어느새 ''북촌사람''이 됐다.

오다가다 인사하는 할아버지도 있고 오후 네댓시쯤 되면 어김없이 양복차림으로 동네를 산책하는 특이한 아저씨도 알고 있다.

가끔은 반장 아줌마를 길거리에서 만나 수다를 떨기도 한다.

동 이름은 있으되 정서적 의미의 ''동네''는 사라지는 요즈음 그나마 동네다움을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서울의 한가운데 있는 가장 촌(?)스러운 곳.

좀 아이러니컬하지 않은가.

나는 북촌이 좋다.

모두가 시간의 경주를 벌이듯 빠르게 달리고 변화하는 시대에 천천히 느릿느릿 걸어가는 시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고,우리가 잊고 살았던 기억과 향수를 떠올리는 곳이며,그 길과 집들의 오밀조밀함이 상상력을 발동시키는 곳이다.

일에 쫓겨 자칫하면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리기 쉬운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도 이곳은 더없이 좋은 근무장소다.

동네의 생기가 일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이제 곧 봄이 되면 집집마다 꽃과 나무들이 일제히 피어나 하루종일 동네를 향기롭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