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가들이 좋아할 일이 생겼다.

서울지방법원과 미국 상원이 한국정부, 즉 금융감독위원회의 처사에 대해 딴죽을 걸어 왔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권력이 집중되고 있는 금감위가 곱지 않았을 터에 ''잘 됐다'' 싶을 것이다.

사법부와의 마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 11월3일 제2차 기업구조조정 때도 금융감독원이 법원의 소관사항을 건드렸다해서 성명서를 법원이 냈었고, 또 공적자금관리특별법에 대해서는 위헌심판을 제청해 놓고 있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종금사 영업정지 명령에 따른 손실에 대한 소송에서도 금감원이 패소했다.

이러한 일련의 법적 판결을 두고 법이 관치금융을 다스리려는 의지가 있는 것처럼 기사를 쓰기도 한다.

''수익증권 환매연기 조치''만 하더라도 법원은 이 조치의 불법성을 은근히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조치는 금감원과 금융기관의 관계에는 타당할지 몰라도 고객과 기관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렇게 되자, 언론에선 유사한 손해에 대한 법적 대응이 봇물을 이룰 것이라고 예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그렇게 소란 피울 일은 아닌 듯 싶다.

첫째, 법적으로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법이 문제라면 그것은 헌법소원감이지 송사와는 무관하다.

둘째, 법원이 사태의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일 대우가 부도날 때 환매연기를 안했었다면 어찌 됐을 것인가.

그것을 생각했다면 법원은 금감원이 대우부채를 떠안게 된 사태부터 단죄했어야 한다.

왜 국민의 세금인 공적자금으로 부도난 대우 채권을 사주어야 했느냐고 말이다.

부도채권에 대해 50%, 80%, 95%까지 원금을 받았으면서도 못 받은 것에 대해 까탈을 부린다면 앞뒤가 바뀐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미국상원이 산업은행의 회사채 신속인수 조치에 대해 불법적인 처사라거나, IMF협약 위반이고 WTO 규정과 미국 국내법 위반이라는 주장과 함께 결의안 채택을 한 것도 따져보면 별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물론 한국의 금감원과 한국의 금융관행이 못마땅하겠지만 불법도 아니고, 규정이나 협약위반도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 만큼, 결국 미 행정부의 압력수단으로 남아서 장차 통상마찰의 소지가 있다는 정도로 해석해야 옳다.

그렇다면 금감원은 아무 문제가 없나.

그렇지 않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안다.

과연 미 상원이나 서울지방법원이 관치금융을 어느 정도 흔들어 놓을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그것은 한국의 사법부는 원고가 있는 송사만을 다룰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으며, 미국으로서는 정치적 압력이상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관치금융은 이만 저만한 문제가 아니다.

은행합병, 은행장 선임, CBO펀드 등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관치금융은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다.

또 회사채 신속인수나 대우채 해결방안을 포함,관치금융 행태는 불법이 아닐 수가 없다.

금융에 관해서는 고쳐야 할 법이 한두개가 아니다.

헌법소원감이 널려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인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법 때문만도 아니고 또 옳기 때문도 아니다.

과거 관치의 잔재를 청산키 위한 설거지 작업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시장에 맡길 터이지만,그동안 해놓은 관치의 잘못을 털어내기 위해 ''관치수법''을 동원해서라도 정리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정당성이 있는 것이다.

즉 이후부터는 시장에 맡기고 소송에 걸려들 일도, 의심 살 일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설거지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국가소유가 됐지만 은행도 빠른 시일 내에 민영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계획을 믿기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민영화나 규제완화를 외치지 않은 때가 한해도 없었지만 금융이 발전한 흔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은행''의 심사능력은 지난 30여년 동안 발전했다고 할 것이 별로 없다.

때문에 한국의 금융은 안정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법원이나 미 상원 때문에 한국금융의 번지수가 제대로 찾아진다면,그래서 금융이 안정될 수 있다면, 그것은 역사적인 것이며 제2 한강의 기적도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이다.

bkmin@cf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