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집사람과 함께 시장에 갔다.

저녁을 마치고 시장을 한 바퀴 도는 것이 습관이 된지 오래지만,날씨가 추워 며칠을 건너뛰었더니 모든 것이 생소했다.

부족한 운동이라도 보충할 요량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언론 보도만으론 알 수 없는 삶의 맥박을 느낄 수 있어 요즘은 일상사가 됐다.

언론보도가 구체적 현실과 일치하기는 커녕 정반대라는 느낌을 받을 때면 더욱 그렇다.

광우병(狂牛病) 파동도 마찬가지다.

광우병이 유럽에서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는 보도를 익히 들었던 터라,수입쇠고기를 판매하고 이용하는 정육점과 외식업체의 손님이 전혀 없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보도가 나간 직후엔 사람들의 발길이 줄었지만 지금은 다시 회복되고 있다는 것이 시장 사람들 말이었다.

"우리나라는 광우병에 철저히 대비해 왔다. 때문에 광우병으로 인해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이 국민에게 먹혀들어 갔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경기 위축을 우려해 문제를 축소시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정부와 우리 모두가 광우병 문제에 적극 대처하기보다는 망각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점이다.

위험이 닥쳤을 때 머리를 모래 속에 파묻음으로써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타조처럼….

우리는 광우병이 5∼10년의 잠복기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로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가장 위험한 전염병이 될 징후가 크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광우병은 결코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표면적으론 쇠고기와 동물성 사료의 유통망이 전세계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생명의 자연 질서에 개입하려는 인간의 오만이 극복되지 않는 한 광우병과 같은 부작용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우병의 발병원인이 분명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우선 동물성 사료와 관계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광우병이 사람에게 전파된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는 하지만 광우병 소의 신경조직은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을 일으킨다고 하지 않는가.

인간이 어떻게 다른 종인 소의 병에 감염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를 섬뜩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인간과 짐승, 즉 종과 종을 구별하는 경계가 무너진 것은 우리가 생명의 자연적 질서에 개입했기 때문은 아닐까?

이러한 의문은 시장을 산보하는 동안 내내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채식동물인 소가 풀만 먹고 살아야 하는데,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주었던 것이다.

소가 소를 먹은 꼴이다.

시장을 둘러보면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온갖 자연물이 눈에 띈다.

대표적인 것이 계란이다.

밤에도 불이 환하게 밝혀진 양계장의 닭들은 밤과 낮을 구별하지 못하고 계란을 기계처럼 생산한다.

이런 계란은 수정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의 식탁에 자주 오르는 깻잎도 이러한 방식으로 생산된다고 한다.

밤이 없는 비닐 하우스에서 성장한 깨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오로지 잎사귀이기 때문에 열매를 맺을 필요가 없을지 모르지만, 수정을 하지 않는 계란과 열매를 맺지 않는 깨는 자연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현대의 문명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닭에게 자연수정을 할 권리를 주어라!'' 또는 ''깨도 열매를 맺을 권리가 있다!''는 말은 어쩌면 개그 콘서트에서나 우스갯소리로 사용될 정도로 인간은 이미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있다.

우리는 인간이 필요로 하고 또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게 곧 자연적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광우병은 이러한 믿음이 인간의 독신적(瀆神的)인 오만이라는 점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광우병이 자연의 질서에 개입할 수 있다는 인간의 어리석음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그것은 분명 인우병(人愚病)이다.

이 점을 간과한다면 문명의 병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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