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부도가 난 한국부동산신탁(한부신)의 사후수습 노력이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모양이다.

채권단이 워크아웃을 중단하되 6개월간 한시적으로 채권회수를 유예한다고 결의하긴 했지만, 그나마 주택은행과 동양종금이 한부신측 분양대금 2백억원 가량을 대출금과 상계처리한데 대해 다른 채권금융기관들이 반발하는 바람에 법적 구속력이 없는 채권단 결의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이같은 결과는 이미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다.

한부신의 경영부실이 워낙 뿌리 깊고 오래된 탓도 있지만 더 직접적인 이유는 어느 누구도 사후수습 노력을 주도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채권단 입장은 어중간하다.

당장 한부신을 청산하자니 입주예정자 등 피해자들의 반발과 당정의 압력을 감당할 자신이 없고, 그렇다고 일반인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워크아웃을 연장해 봐야 채권회수에는 도움이 안되고 신규자금만 더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사후수습 자체가 표류하면서 관계자들의 피해만 커지는 최악의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현재로서는 더이상의 피해확산을 막는 유일한 방안은 정부가 나서서 사후수습을 주도하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일이 이렇게 악화된데는 관계당국의 무사안일과 무책임한 행정 탓도 크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한부신은 정부 재투자기관으로서 경영내용과는 관계없이 대외적으로 공신력을 인정받아 왔다.

비록 외환위기 이후 ''대마불사''의 신화가 깨지고 은행마저 퇴출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공기업이 부도난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명색이 공기업인 한부신이 부도가 날 때까지 아무런 대책없이 방치하다가 막상 부도가 나자 채권단에 워크아웃 연장을 요구하는 것은 무원칙하다는 비난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실효성도 없다는 점에서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본다.

공신력이 생명인 신탁회사가 부도가 났는데 누가 안심하고 사업을 계속하려고 할 것이며, 채권회수에 도움이 안되는데 어느 채권금융기관이 신규자금을 대주려 하겠는가.

6개월간 시간을 줘 수익성이 있거나 마무리 단계에 있는 사업들은 살린다고 하지만 돈도 없고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입주예정자들이나 시공사들이 움직이려 하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거듭 말하지만 채권금융단의 6개월간 채권회수 유예는 시간만 끌고 피해를 오히려 키울뿐 한부신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 책임아래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하루빨리 마련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