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열없이 장기호황을 이끌어가는 주역으로 찬양받다가 최근들어 갑자기 ''급격한 경기침체를 부른 장본인''으로 급전직하 된 그린스펀 FRB 의장의 기분은 어떨까.

새 정부에 잘보이기 위해 소신도 없이 감세정책에 대한 찬양으로 돌아섰다는 지적까지 겹친 국면이고 보면, ''인심은 아침 저녁으로 변한다''는 말을 새삼 되새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야미 마사루 일본은행 총재도 곤혹스럽기는 아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작년 8월 미국 및 국제통화기금(IMF)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콜금리를 0%에서 0.25%로 올렸을 때와 최근의 세평은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밖에서 봐서는 ''짜고 친 고스톱''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았지만, 당시 일본언론은 오쿠라쇼(大藏省) 니혼바시(日本橋) 지점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일본은행의 반란''이라며 의미를 부여하고 하야미 총재의 용기를 찬양했었다.

그러나 최근들어서는 집권여당 간부들조차 ''돌대가리''라는 등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는 분위기인 모양이다.

그린스펀과 하야미 총재의 추락,그 원인은 따지고보면 간단하다.

경제가 생각했던대로 잘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경우 가장 효과적인 경기조절수단이 금리이고 보면 경기급강하시에 중앙은행 총재가 비난의 표적이 되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큰 폭인 경우에도 0.5%포인트를 넘지않는 게 보통인 금리조정이 과연 경기조절을 위한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치가 될 수 있는지,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을 것같다.

예컨대 그린스펀이 작년에 금리를 올리지 않았거나, 작년 11월이나 12월초에 앞당겨 금리를 좀더 큰 폭으로 내렸더라면 미국경제상황이 과연 지금보다 훨씬 좋았을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시각에 따라 결론이 다르겠지만,나는 별 차이가 없으리라고 본다

금리 등 거시정책 수단에 대한 환상은 금물이다.

일본이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리고 또 내리다가 결국 0% 금리라는 사상초유의 상황까지 연출했지만 불황에서 탈출하지는 못했다는 점, 그래서 지금은 경기조절 수단까지 사실상 상실해 별 의미도 없는 0.15% 재할인율 조정을 놓고도 소리가 요란하기만 한 꼴이란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대체로 금리는 높을 때보다 낮을 때가 기분좋게 느껴진다.

저축보다는 빚이 많은 우리같은 입장에서 보면 특히 그렇다.

그런 점에서 대표적인 실세금리라 할 국고채금리가 4%대 진입을 눈앞에 둔 상황이라는 얘기도 나쁘게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또달리 생각할 점도 없지 않다.

우선 국제금리보다 낮은 국내금리 수준이다.

3년만기 국고채금리가 10년짜리 미재무부증권보다 낮다는 점은 생각할 점이 있다.

지속적으로 외자를 도입해야 할 나라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

은행이 자금을 운용할 곳이 없어 국고채금리가 LIBOR(런던은행간 금리) 3개월물보다도 낮은 수준이라면 금융기관들의 외자도입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정기예금 금리가 내리고 한국은행이 콜금리를 내렸다는데도 요지부동인 대출금리는 또다른 측면에서 문제다.

어쨌든 현행 국내금리 체계는 문제가 있다.

국고채금리나 정기예금금리(6%선) 등이 자본수입국에 걸맞지 않게 낮은 수준인 반면 은행대출금리는 이들 금리와는 대조적으로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은행이나 통화당국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까닭도 있을 법하다.

수신금리를 낮춰 돈을 증시로 몰리게 해 경기부양 효과를 거두려는 정책의도를 꼭 비난해야할 까닭이 없지 않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금리건 환율이건 정책변수의 의도적 운용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꼭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하기 어렵다.

경기부양에 급급한 금리정책은 일본꼴이 될 수 있다.

그린스펀의 추락은 또 다른 의미에서 교훈적이다.

그 누구도 정책변수의 운용만으로 경제를 원하는대로 끌고갈 수는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경기 변곡점(變曲點)에서 국내 정책당국자들이 그린스펀이나 하야미의 추락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본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