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이 투입돼 정상적인 영업을 하고 있는 서울은행을 비롯 부실화된 일부 생명보험회사나 상호신용금고 등을 포함, 30~40개 금융기관이 상반기중 매물로 쏟아져 나온다.

제대로 팔리면 공적자금을 조기에 회수하고 새 주인에 의해 경영정상화를 추진할 수 있지만 자칫 헐값매각, 국부유출 시비도 불거질 수 있다.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앞으로 금융기관이 부실화되면 P&A(자산부채 이전)나 청산 등을 통해 상시퇴출될 것이라고 밝혔다.

◆ 무더기 매각은 곤란 =금융기관 매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매각이 어려워지거나 제값을 못받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IMF사태 이후 지난 98,99년에도 금융기관들이 대거 부실화되면서 한꺼번에 매각을 추진한 결과 제대로 못 팔거나 제일은행처럼 두고두고 헐값 시비에 휘말린 선례가 있다.

금고의 경우 작년 10월 이후 영업정지된 20개 금고가 일단 매각대상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다음달초 동방금고(서울) 흥성금고(인천)의 매각설명회를 가질 예정이지만 인수자가 쉽게 나타날지는 미지수"라고 밝혔다.

작년엔 17개 금고의 매각을 추진해 9개를 팔았지만 올해엔 매각성공률이 훨씬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손보업계도 10개사중 신동아 대한 국제화재의 매각협상이 진행되고 추가로 3개사 정도가 매각가능성이 있어 공급과잉 양상마저 엿보인다.

작년 4.4분기부터 추진해온 대한 국제화재의 외자유치 협상이 지지부진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작년 증시침체의 여파로 오는 3월말 결산때 건전성에 문제가 생기는 증권.투신사들이 잇달아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증권업계는 D증권이 국민.주택 합병은행과 매각협상을 벌이고 외국계 자본이 투자한 2∼3개 증권사가 매각을 추진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다만 결산 때까지 주가가 계속 오른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매물 자체가 부실해 인수자들의 매력을 끌지 못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 99년 제일.서울은행의 매각작업이 큰 애로를 겪은 것도 추가부실 우려 등 부실이 심한 데다 인수희망자가 하나씩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전반의 경영난 속에 삼신 현대 한일생명의 새 주인을 찾는데 대해 정부도 크게 기대하지는 않고 있다.

금감위는 이들 3개사의 매각을 추진하되 지주회사 편입 쪽에 더 무게를 둔 인상이다.

여기에 비하면 재벌 외국계은행 등의 신규 진출 의욕이 강한 카드 쪽은 비교적 상황이 좋은 편이다.

외환카드 동양카드 등은 복수의 인수희망자와 협상을 벌여 매각조건도 유리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정부 매각작업도 혼선 =올해부터 금융구조조정의 중심축이 금융감독위원회에서 재정경제부로 넘어가면서 정부 안에서도 금융기관 매각작업에 일시적인 혼선을 빚고 있다.

특히 공적자금관리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공적자금 투입이 가능해져 시간 지연도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대한생명 매각을 놓고 금감위는 조기매각을 주장해온 반면 재경부는 정상화 뒤 매각 쪽으로 기울어 논란을 빚었다.

정부 관계자는 "대생에 공적자금 1조5천억원을 투입하고 아예 정상화 뒤로 매각시기를 미루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고 밝혀 매각시기가 내년으로 늦춰질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혼선은 정부 당국자들이 공적자금 문제에 관한 한 소극적인 자세로 바뀐 탓으로 지적된다.

작년말부터 한빛 등 6개 은행 완전감자(減資.자본금감축) 파문, 공적자금 청문회 등으로 국민 혈세인 공적자금 사용에 대한 비판이 많다.

수조원이 투입된 서울은행과 대생 등을 제값 받고 못 팔면 또다시 혈세를 날렸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