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순간에 꼭 한발씩 늦었던 것으로 유명한 인사가 있다.

링컨 대통령의 장남인 로버트 링컨(Robert Todd Lincoln) 바로 그 사람이다.

1865년 4월14일 저녁, 외출했다 귀가한 그는 하인들로부터 연극구경 간 부모한테 빨리 가보라는 전갈을 받았다.

황급히 달려갔지만 그가 극장 현관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이미 흉탄에 쓰러져 옮겨지고 있는 중이었다.

1881년 7월2일 로버트가 가필드(Garfield) 대통령 밑에서 육군장관직을 맡고 있을 때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여행을 앞둔 대통령으로부터 역(驛)에서 만나자는 통지를 받자 그는 서둘렀다.

그렇지만 그가 가보니 역 주변은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다.

대통령이 조금전에 저격을 당해 생긴 일이었다.

그로부터 20년 후 로버트는 매킨리(McKinley) 대통령한테서 초청장을 받게 된다.

뉴욕주 버펄로에서 열리는 박람회에 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이번에도 로버트가 행사장에 도착하기 직전에 대통령이 어느 무정부주의자로부터 총상을 입었고 일주일 후에 사망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경제정책,특히 통화정책도 한발씩 늦어져 실기(失機)하고 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경기가 침체되기 시작했는데도 정책당국의 손쓰기가 늦어져 급냉각으로 치닫는 경우가 생기는가 하면, 이미 회복조짐을 보이고 있는 경제에다 경기부양을 한답시고 돈을 쏟아붓기도 한다.

경제란 연약한 것이다.

마치 심장 약한 사람과 같아서 정책당국이 뒷북 쳐가며 온탕 냉탕을 강요하게 되면 감당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고자 나온 것이 통화정책의 중간목표를 미리 정하고 공표하는 제도였다.

몇몇 당국자들이 자의적으로 정책을 운용할 수 있는 소지를 없애고 민간부문이 충격없이 경제활동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는 제도이다.

그러나 한가지 문제가 해결되는가 하면 또다른 문제가 고개를 들게 되는 것이 경제현상이다.

기계적으로 룰에 따르다 보니 부작용이 많았고 편법들이 성행하게 돼 금융시장을 교란시키고 정책의 효율성을 저해하게 된 것이다.

또한 중간목표를 통화량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금리로 할 것인가, 통화량으로 하는 경우에도 통화(M1) 총통화(M2) 총유동성(M3) 중에서 어느 것을 택해야 하는지도 여간 골치아픈 문제가 아니었다.

최근 한국은행이 그동안 통화정책의 중간목표로 삼아오던 총유동성(M3)을 ''감시지표''로 격하시키고 그대신 단기금리(콜금리)를 위주로 통화정책을 운영해 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실물시장보다 금융시장이 파행적인 경우 통화량을 운영목표로 삼게 되면 경제불안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오래전부터 금리지표 중심으로 경제안정을 도모해 왔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의 통화량지표들이 괴리현상을 보여왔음에도 여태껏 운영목표로 움켜쥐고 있다가 이제야 풀어주는 것은 한발 늦은 움직임이라고 생각된다.

더 큰 문제는 운영목표로 돼 있는 금리지표가 시중유동성에 관한 사정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자금난에 계속 허덕이고 있지만 은행에는 돈이 넘치다 보니 콜금리나 국고채금리가 5%대로 떨어져 있다.

이런 지표를 과신하다 보면 잘못된 방향의 정책이 나올 우려가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통화당국은 특정지표 한두개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신축성을 발휘해서 여러 채널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종합해 판단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금융시장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중간목표제 이전의 ''재량적인 통화정책''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정보의 수집과 해석,그리고 정책의 입안과 집행에 있어서 정성을 다함으로써 뒷북치는 일을 최대한 피해가야 할 것이다.

로버트 링컨은 항상 한발씩 늦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한테 폐를 끼친 바는 없다.

그러나 통화정책이 한발 늦는 경우에는 경제에 심대한 폐해를 불러올 수 있다.정책당국자들은 바로 이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본사 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