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제도는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 현실에 맞을까.

새해초부터 별로 신선하지도 못한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집중투표제를 도입키 위한 시민단체들의 입법청원에 따라 이 제도를 즉각 예외없이 실시토록 하자는 내용의 의원입법안이 정부의 상법개정안과 함께 국회에 계류중인데다,사외이사 배상책임보험을 회사에서 가입토록 의무화하자는 움직임도 금감위쪽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외이사의 직무상 과실로 인한 배상책임을 회사비용으로 보험에 가입,커버해주는 곳은 현재도 없지는 않다.

그중에는 사외이사에게 지급하는 봉급보다 보험료가 훨씬 더 많은 경우도 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꼴이지만,임원들을 대상으로 제기될 수 있는 배상책임소송 가액이 수백억원대에 달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

사외이사들의 임원책임보험을 회사에서 들도록 의무화하자는 구상은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려면 그렇게 해야한다는 주장을 바탕으로 한다.

유능하고 자격있는 사람이 월 2백만~3백만원 받으려고 아파트를 날릴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려할 까닭이 없으므로 배상책임을 면제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나름대로 현실감도 있고 논리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반대하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우선 권한만 있고 책임이 없는 자리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자산규모 2조원이상인 대규모 상장기업의 경우 종전의 감사기능을 사외이사 중심의 감사위원회로 대체하도록 하는등 사외이사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마당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해야할 것 아니냐,책임이 없는 자리는 결국 도덕적 해이를 낳게 된다는 주장도 경청할만 하다.

그렇지않아도 사외이사 자리가 전직관료 등의 소일거리로 통용되고 있는 마당에 기업부담만 가중시키면서 면책까지 제도화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그러하다.

여기서 어느 쪽 주장이 옳고 어느 쪽 주장이 그르다는 판단은 우선 유보하자.나는 사외이사제도를 포함한 이른바 기업지배구조 개편논의는 매우 독특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그것은 사외이사 선임과 관련,집중투표제 의무화를 요구하는 쪽과 이에 반대하는 쪽의 주장에 전적으로 일치하는 공통점이 있다는데서도 엿볼 수 있다.

어느 날인가.

진념 재경장관으로부터 들은 얘기인데,집중투표제 주창자로 알려진 C교수는 이 제도를 의무화하더라도 기업에 별다른 영향이 없을것인데 왜 정부가 반대하는지 알 수 없다며 불평을 했다고 한다.

의무화하더라도 해당기업에서 사외이사 임기를 분산시키면 사실상 집중투표제는 있으나 마나다.

따라서 기업이 충격을 받을 까닭이 없다는 주장이었다고 한다.

의무화에 반대하는 경제단체 관계자들도 사외이사를 매년 한명씩 선출하는등 편법을 동원하면 비정상적이지만 집중투표제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그럴바엔 이 제도는 의무화하기 보다 기업자율에 맡기는 것이 순리라는 주장이다.

나는 양쪽이 기업지배구조 문제는 제도보다는 운용이 중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고 본다.

모든 제도가 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특히 그런 측면이 두드러진다고 생각한다.

지난 98년 증권거래소 상장규정을 개정,전체이사의 25%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토록 한 것을 시발로 한 기업지배구조개편 논의는 갈수록 가속도가 붙는 형국이다.

현행 우리 제도는 사외이사수 감사위원회설치등 여러 측면에서 OECD가이드라인 보다도 앞서가고 있기도 하다.

그 결과로 기업경영의 투명성이 괄목할 만큼 제고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려운 경제상황속에서 기업들의 거부반응도 없지않은 문제들을 계속 몰아붙이는 것이 꼭 능사일 수는 없다.

정부에서 집단소송제 도입을 유보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기업지배구조 문제는 최근 몇년새 제도화된 것들이 어떻게 정착되고 있는 지를 봐가며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대처해나갈 성질의 것이다.

사외이사의 기능이나 역할만 해도 그렇다.

임원배상책임보험을 들어주느냐 마느냐는 문제는 기업에 맡겨놔도 좋을 성질의 것이기도 하다.

< 본사 논설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