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의원 꿔주기는 워싱턴에서도 화제다.

워싱턴 출근길 한 FM 방송의 디스크 자키가 한국 민주당의 ''의원 꿔주기''를 지구촌 화제로 들먹이며 "재미있다. 기네스북 감이다.미국 정당들도 한번쯤 생각해 봄직한 방식"이라는 촌평을 늘어 놓았다.

''미국인다운 반응''이라는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 디스크 자키는 갑자기 1백80도 태도를 바꿔 "기발한 발상이긴 하지만 개를 잡아먹는 한국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U턴형 일침''을 가했다.

미개사회에서나 있음직한 에피소드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미국유권자들은 민주 공화 양당 그 어느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 백중세를 그려냈다.

특히 1백석인 상원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각각 50석씩 똑같이 나눠 가졌다.

따라서 미국 민주당도 어디선가 상원의원 한명만 꿔올 수 있다면 상원의 판세를 하루 아침에 바꿔놓을 수 있다.

한국의 민주당이 자민련에 3명의 의원을 임대해줌으로써 전대미문의 정치적 파문을 던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한두명의 의석은 각당의 위치를 하늘과 땅으로 갈라 놓을 수 있다.

이런 판국에 한국으로부터 들려오는 의원 꿔주기가 미국 의원들의 귀를 자극한 사건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의원 꿔주기는 한국처럼 3당이 묘한 삼각관계를 이뤄야 가능한 시나리오다.

민주 공화 두 당으로 갈려 있는 미국에서는 의원들을 꿔 줘봐야 적(敵) 좋은 일만 시키는 일이니까 아무 소용 없는 짓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미국에서도 한 두 의석이 차지하는 비중과 의미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민주와 공화의 지지기반이 공고해지고 있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는 요즘에는 더욱 그렇다.

한국이 영·호남의 영구지지기반으로 갈려 있는 것처럼 미국도 흑인 소수계 등 블루 칼라를 지지기반으로 하는 민주당과 화이트 칼라와 부유층 백인을 기반으로 하는 공화당으로 굳게 갈려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인구조사국이 발표한 인구통계는 미국의 향후 정치풍향계에 많은 시사를 던지는 귀중한 자료다.

미국은 10년마다 인구조사를 실시한다.

지난해 미국의 총인구가 2억8천1백42만1천9백6명이라고 발표한 인구조사국은 미국인들이 뉴욕 펜실베이니아 코네티컷 오하이오 등 동북부에서 애리조나 텍사스 캘리포니아등 남서부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10년마다 하원 의석수를 인구비례에 따라 조정하게 돼있는 미국법에 따라 뉴욕과 펜실베이니아는 하원의석을 2석이나 잃은 반면 애리조나 텍사스 플로리다 조지아등은 2석씩을 더 확보하게 됐다.

이는 미국 동북부에서 남서부로 ''대규모 권력이동(power shift)''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 두석이 결정적 의미를 지니는 미국에서 이같은 인구분포의 변화와 그에 따른 의석수 변화는 양당에 민감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민주당과 앨 고어에게 표를 몰아준 뉴욕과 펜실베이니아가 힘을 잃고 있는 반면 조지 부시에게 힘을 실어준 텍사스와 조지아 콜로라도 네바다 등이 득세를 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선거가 플로리다의 재검표로 장기화되자 민주당 부통령후보로 나선 조지프 리버만은 "모든 유권자의 표가 공평한 대접을 못받을 경우 우리는 후세들을 제대로 교육할수 있는 기반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른들이 민주주의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칠수 있겠냐"는 반문이었다.

한국의 학교교육은 이미 붕괴되었다는 것이 일반국민의 인식이다.

교육제도에 문제가 있지만 이보다 더 큰 요인은 정치지도자들의 부도덕이라는 지적이 많다.

특히 빌려주기 식의 ''잔꾀 많은 도둑''만을 양산하는 정치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비쳐질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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