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호 <다임인테스트먼트 사장>

2001년은 우리 경제의 진로를 우리나라 각 경제주체 스스로가 검토하고 결정하여 시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가늠하는 해가 될 것이다.

1997년 10월에 갑자기 찾아온 금융위기와 뒤이은 경제위기로 우리경제는 1998년 <>6.8%라는 큰 폭의 성장후퇴를 경험하였고, IMF의 금융지원을 받는 과정에서 미국 및 IMF의 처방을 받아들여 1999년에는 10.7%의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그러나 2001년을 불과 몇일 앞 둔 현 시점에서 올해 3/4분기까지 분기평균 10.5%라는 높은 성장에도 불구하고 "금융위기후 3년째 재위기 직면"이라는 징크스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현재 우리 경제의 여건이 여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2000년 상반기까지 붐을 이루면서 우리경제의 새로운 성장원동력으로 각광을 받는 듯 했던 벤처열기는 영하의 수은주와 같이 얼어붙었으며, 수출은 그럭저럭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으나 반도체가격 하락, 철강수출 등의 덤핑제소, 가전제품의 지속적인 경쟁력 저하 등으로 주력 품목의 수출부진이 가시화되고 있고 교역조건은 90년대초 이후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다.

물가 및 금리는 안정된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주가와 환율이 불안하다.

금융권의 구조조정이 원활히 추진되지 못하면서 은행의 소규모 신용파탄이 줄을 잇고 있는데다 금융중개기능이 원활하지 못함으로써 기업들의 자금난과 그로 인한 투자부진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나아가 각 경제주체의 경우도 가계는 역자산효과와 고실업으로 소득수준이 저하되고 있으며, 기업은 99년의 구조조정에 따른 큰 폭의 이익실현 이후 내수침체와 수출부진으로 감익이 예상되고 있기도 하다.

2001년은 그나마 좋았던 부분 조차 미국경기의 경착륙 가능성, 국제원유가격의 상승, 중국 및 동남아경제의 조정 등 대외경제환경의 악화와 내수경기의 침체 가속화 등으로 잠재성장률 수준의 경제성장 전망에도 불구하고 점차 나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지난 2년간 온 나라가 요란하게 구조조정을 추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경제의 제도적 피로(system fatigue)는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황이다.

또 경제의 자율조정 기능에 따라 내년 하반기 이후 우리경제의 회복을 기대하고는 있으나 그 힘이 99년초와 같이 강하게 나타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면 모든 것이 어려워만 보이는 2001년을 맞이하면서 우리 기업들은 어떤 전략으로 임해야 하는가.

그 간단한 답은 유동성 확보, 리스크관리의 강화, 기업내 점검기능의 강화, 주주중시 경영에 대한 재인식 등 원칙과 원론에 충실한 경영이 그 어느 때 보다도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금융권의 구조조정 지속과 시장의 불안정한 움직임으로 언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 현금 확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투자자금의 회임기간을 감안한 투자정책의 수립은 물론이고, 운영자금도 적어도 분기단위로는 계획성 있게 가져가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무분별한 사업확장이나 투자보다는 2002년을 생각하는 사업전략이 필요하다.

은행권의 통합과 재편과정으로 장기적으로는 금융중개기능의 효율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단기적인 측면에서는 기능향상의 수혜보다는 거래금융기관이 직면할 조정과정에서 자금조달의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리스크 관리의 강화가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어야 한다.

우선 아직까지는 금리와 물가가 안정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국제원유가격, 비금속광물, 농산물 등 원자재 가격이 만족할만한 수준까지 쉽게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감안하면 코스트측면에서의 대응은 필수적이고, 전반적인 금리의 하향안정에도 불구하고 기업에 따라 차별화될 프레미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내년에는 현재 지속적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환율의 반전 또는 단기적인 변동성 확대에 잘못된 포지션 대응으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매우 크므로 환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하고, 더욱 확대 시행되는 외환자유화에도 미리미리 대비하여야 한다.

또 기업운영의 측면에서도 분야별로 벤치마크를 정하여 수시로 점검하여야만 시스템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셋째, 기업내의 조직, 인사, 재무, 마케팅 등 관리기능의 재점검이 필요하다.

어려운 시기일 수록 각 기능간의 원활한 협조와 시너지효과가 절실하다.

우수인력의 유출, 특정 부문에서의 관리기능의 저하, 고객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 시장으로 부터의 신뢰 상실 등에 따른 손실이 경기가 좋은 시기와는 달리 더욱 크게 확대되어 나타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규모의 확대에는 소극적이더라도 종업원 교육의 강화, 적극적인 기술투자, 신시장 개척에의 노력, 국내외 우량기업에 대한 벤치마킹 강화 등 내실을 다져 다가올 경기호전에 대응하여야 한다.

넷째, 지난 2년간 우리 기업들은 시장으로 부터의 평가에 대한 중요성을 재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를 무시하는 경영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출시장에서는 막연한 저가경쟁력으로 일관하고 있고, 내수시장에서는 막연한 애국심에 크게 기대를 하고 있다.

세계 일등제품이 아니고서는 또 진정 고객만족을 생각한 서비스가 아니고서는 더 이상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기업지배의 측면에서도 더욱 드세질 소액주주의 권한 강화에 대응하여야 함은 물론, 고객, 종업원, 주주, 하청업체, 거래은행, 정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 (stakeholder)의 서로 다른 이해관점을 충분히 감안한 경영이 아니고서는 기업의 존속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다.

그동안 수도 없이 거론되어 왔던 주주중시 경영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에서 열거한 기업의 대응은 가장 원론적이고 기초적인 것이다.

지난 2년간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우리는 원칙에 충실하고, 미리미리 준비하며, 변화의 흐름을 남보다 빠르게 앞서나간 기업만이 살아남는 것을 보아왔다.

구조조정은 헌 것을 허물고 그 위에 새틀을 세우는 것이다.

틀도 중요하지만 틀을 자리잡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모두가 손잡고 새 틀을 끌고 나갈 수 있어야만 구조조정의 열매를 따먹을 수 있다.

스스로가 준비하고 대응할 수 있을 때 하지 않으면 결국 남의 손에 자신의 운명을 맡겨야 하고 종국에는 고락을 같이해온 수 많은 이해관계자가 한꺼번에 생사의 기로에 서게된다.

고통스러운 한해가 될 것을 각오하고 내실을 다시는 2001년이 된다면 그 성과는 멀지 않은 시기에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