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재경부가 발표한 채권시장 안정대책은 회사채 시장이 직면하고 있는 극심한 어려움을 차라리 가감없이 드러냈다고 본다.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회사채를 매입해주지 않으면 안되는 시장 부재(不在)의 상황이 되고 말았다는 점을 인정한 결과가 바로 이번 대책이다.

채권시장 안정대책은 내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65조원의 회사채중에서 기업 스스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채권을 약 25조원으로 보고 이중 약 80%를 산업은행이 직접 인수해주는 방안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정부가 이같은 특단의 대책을 내놓기에 이른 것은 지난 98년초 러시를 이루면서 발행됐던 회사채들이 3년만인 내년에 일제히 만기를 맞는등 채권 수급에 심각한 불일치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회사채 수요가 절멸되다시피한 것이 현실이고 지금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내년중에 또 한차례 심각한 자금대란이 발생될 것은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기도 했다.

기업체 자금담당자들 사이에서 국내 최상위 5개사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부도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말까지 공공연히 떠돌았던 터이고 보면 정부의 이번 대책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본다.

문제는 어쩌다 이같은 상황으로까지 내몰리게 됐는가 하는 점이다.

기업신용을 근간으로 하는 채권시장에까지 정부가 일상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면 이는 시장의 실종에 다름 아니라 하겠고 국민의 정부 개혁 철학이기도 했던 시장경제 발전과는 더욱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어떤 절차와 수순에 따라 금융 개혁을 추진해왔길래 시장의 영역은 줄어들고 정부의 판단과 개입이 더욱 절대적인 기준이 돼가고 있는가 말이다.

대우사태에 따른 환매 소동,투신사 부실,기업 신용등급 하락등 다양한 원인이 있다고 보지만 역시 정책의 경직성과 금융기관들의 채권투자 기피 현상이 결정적이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금융기관을 얼어붙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으로는 누구라도 BIS비율을 지목하겠지만 이를 당장 되물리기도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채권펀드 조성에 이어 이제는 국책은행까지 동원되기에 이르렀다면 이는 개혁 방법론 전반에 걸쳐 무언가 다시 생각해봐야할 대목이 적지않다는 반증도 분명 된다고 본다.

이대로 가다가는 당국자들이 기업 자금부를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자조섞인 비판까지 나오고있다는 점을 당국은 가벼이 보아서는 안되겠다.

당장의 해법이 아니라 시장을 살리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