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갈릴리호수 남서쪽에는 타보르라는 산이 있다.

타보르는 본래 배꼽을 뜻하는 말이다.

또 그리스 델피의 아폴론신전에는 옴팔로스라고 부르는 반원형의 돌이 있는데 이것도 배꼽을 뜻하는 말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제각각 그 배꼽으로부터 인간이 태어나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곳을 성역으로 삼았다.

이처럼 사람들은 고대부터 신이 사는 성스런 공간과 인간이 사는 세속의 공간을 구분해놓고 살았다.

성스러운 공간에 대한 고대인의 관념은 중세에도 계속 이어져 유럽에서는 교회와 수도원은 고대의 신전처럼 성역이었다.

가톨릭의 ''비오 베네딕트 법전''에는 "교회의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범법자이거나 국법이 허락하지 않더라도 도와주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실정법에는 어긋난다 해도 양심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것이 교회의 존재이유인 탓이다.

서울 명동성당 만큼 이런 교회의 역할을 충실하게 실천해온 곳도 드물 것 같다.

76년 민주구국선언문 사건 이후 민주화의 성역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명동성당은 87년 6·29선언후에는 각종 반정부 농성의 상징처럼 돼버렸다.

90년대에는 연 평균 3백여건의 장기농성이 있었다는 성당측 발표는 놀랍기만 하다.

초기에는 공권력이 미칠 수 없는 양심세력의 도피처로 인식됐던 명동성당은 점차 성역을 역으로 이용하는 농성자들이 많아져 집단 이기주의의 희생양으로 변했다.

농성의 성격이 달라지면서 명동성당의 대응도 달라졌다.

신자들이 농성자들의 천막을 철거하는 일도 벌어졌다.

교회의 뜻은 아니었다 해도 지난해는 1백년만에 경찰이 투입되는 이변도 생겼다.

명동성당이 시설보호요청서를 내고 앞으로 성당측 사전허가가 없는 시위나 농성을 봉쇄해 줄 것을 경찰에 요청했다고 한다.

최근 한국통신 1만여명의 농성이 큰 상처를 준것 같다.

명동성당은 김수환 추기경의 말처럼 종교적으로는 성역이지만 법률적으로는 치외법권지역이 아니다.

더이상 명동성당을 방패막이로 한 이익단체의 농성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