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에 지원했으면 떨어졌을 학생이 하버드와 MIT에 모두 합격했다''

요즘 한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하루빨리 교육제도를 대수술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하지만 이곳 미국사람들에겐 이같은 일은 너무나 흔한 일상사에 불과하다.

서부 공립 최고인 캘리포니아(버클리)대가 낙방시킨 학생이 사립최고의 명문 스탠퍼드에 입성하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위치한 뉴욕대 지원자가 유난히 많았던 올해엔 ''뉴욕대 낙방,하버드 입학''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게 미국 입시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국의 이같은 소동에는 우선 ''하버드=세계최고,서울대=한국최고''라는 두 개의 단순등식과 ''하버드>서울대''라는 평면적 부등식이 전제로 깔려 있다.

물론 이 등식과 부등식은 누구나 수긍하는 사실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각 개인의 평가기준이 존중되고,몇 개의 예외적 사례만 대입해 보면 위에 열거한 등식과 부등식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만다.

''절대 진(眞)''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하버드 외에도 너무나 좋은 대학들이 즐비하다.

''대학중의 대학''으로 불리는 시카고대를 위시해 칼테크, 카네기멜론, 에모리, 스미스칼리지, 윌리암&메리, 로체스터 등 우리 귀에 익지 않지만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높은 학문적 기상과 전통을 가진 쟁쟁한 대학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음악쪽에 재능이 있는 학생을 둔 학부모 입장에선 줄리아드나 인디애나대가 세계에서 가장 좋은 교육기관이라고 생각할 것이며 건축설계에 남다른 재능이 있는 자녀를 가진 시카고 학부모는 IIT(Illinois Institute of Technology)가 세계 최고의 대학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성균관의 이념을 중시하는 성균관대학이 가장 좋은 대학일 수 있으며,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의 선교관과 기독교관을 중시하는 학부모는 연세대가 제일 좋은 대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일제 압박에 허덕이는 민족에게 웅원 용견 성신을 외치며 교육에 헌신한 김성수 선생의 기상이 배어있는 고려대가 제일 좋은 대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하버드가 서울대보다 더 좋다는 평가 또한 보기에 따라서는 하자가 많다.

아무리 하버드를 나와도 한국어를 모르고 한국문화를 모르는 학생은 한국이라는 특수시장에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외부세계에선 2백위권에 머물러 있는 서울대지만 한국에서는 특수한 상품가치가 나름대로 있는 것이다.

특히 "학벌을 중시하는 한국에서는 일단 서울대를 나와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겐 서울대가 하버드대보다 좋아 보일 수 있다.

개인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은 개인의 특권이자 자유다.

"인생의 문제는 사람이 농익어 문제가 문제처럼 여겨지지 않아야 풀린다"는 얘기가 있다.

마찬가지로 하버드병과 서울대병은 각자의 마음에서 비롯된 병일 따름이다.

입시철만 되면 절과 교회,그리고 교문앞에서 기도를 올리는 부모들의 모습이 신문스케치에 단골 메뉴로 오른다.

너무나 진지한 모습에 누가 감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자기 자식밖에 모르는 이기심의 극치''로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세계는 넓다.

히말라야산맥에는 높이가 8천?가 넘는 준령(峻嶺)들이 즐비하다.

하버드는 이들 기라성같은 고봉(高峰)중 하나에 불과하다.

다만 우리 아이들은 에베레스트만이 산이라고 생각하는 단순 지식과 히말라야 준령들의 20분의 1도 안되는 남산이나 척박한 관악산만 산인줄 알고 그 속에서 들볶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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