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8년 IMF 관리체제 아래 극심한 불경기를 겪은지 2년이 채 못돼 또 다시 불황의 그림자가 엄습하고 있다.

주식시장이 밑바닥을 해매고 부동산 시장도 얼어붙고 있다.

월급쟁이와 자영업자들의 주머니에도 찬 바람이 불고 있다.

이에 따라 저성장 고실업 시대가 점쳐지면서 제2의 소비빙하기가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기업들의 고민도 커지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상품을 만들어야 제대로 팔릴 것인가를 놓고 기업인들은 밤잠을 설치고 있다.

이웃 일본의 기업들도 지난 90년대초 버블 붕괴가 시작되면서 똑같은 어려움에 직면했다.

하지만 일본 기업들은 장기불황의 터널을 지나오면서 생존비결을 터득했다.

난관 속에서도 히트상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 비결은 초저가, 틈새시장, 다이어트, 세마디로 요약된다.

<> 초저가 판매

불황기의 기본 조건이다.

가격거품을 제거하고 제조원가를 철저히 낮춘 제품이어야 성공한다.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은 가격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상품동향과 관련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일본 잡지 "트렌디"는 지난 10년간의 일본 히트상품들을 정리하면서 이 기간동안 가장 위력을 발휘한 것은 저가상품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의류 전문점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유니크로"는 옷값이 비싸기로 정평이 난 일본 유통시장에서 가격파괴의 선봉장으로 통한다.

유니크로의 히트상품인 프리스 소재 재킷이나 트레이너 값은 1천9백엔으로 정착됐다.

제조업자나 소비자나 예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가격이다.

이 저가격 덕분에 유니크로는 올해 매출 2천억엔을 바라보는 대형 소매업체로 도약했다.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1백엔숍 다이소"의 성공 비결도 저가전략에 있다.

일본 전역에 걸쳐 1천8백개나 되는 점포망을 두고 있는 다이소의 경우 1회 발주량이 1백만개에 이른다.

구입단가가 낮아지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에 따라 슈퍼에서 2백엔 하는 건전지 4개를 1백엔에 팔 수 있었다.

통신판매업계 선두업체인 "세실"은 지난 7월 내의류 20개 품목 가격을 점당 99엔에 설정했다.

다분히 1백엔숍을 의식한 가격전략이다.

<> 틈새시장 공략

전문가들은 또 대중시장(매스마켓, Mass Market)을 겨냥하던 상품개발의 초점을 틈새시장(니치마켓, Nitch Market)으로 돌리라고 충고한다.

고객층을 연령 소득 성별 등으로 세분화, 해당 고객의 입맛에 맞는 상품을 내놓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같은 사례 역시 장기불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일본 기업들에서 상당수 발견된다.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시간절약상품"이 대표적인 사례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동안 머리를 깎아주는 주유소 부설 간이미용실은 지난 97년 7월에 처음 선보인 이래 장기간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재팬에너지의 주유소 한켠에 자리를 낸 이 미용실은 고객이 주유 세차 엔진오일 교체 등을 끝내는 15분 동안 머리를 다듬어준다.

물론 퍼머와 같은 긴시간을 요하는 손질은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의 주류는 주부들이다.

이 미용실은 현재 한달 매출액이 2천만엔에 이르러 종업원 1인당 매출이 업계 평균의 3배를 웃돌고 있다.

<> 다이어트 체질화

불황기에는 상품개발 전략을 짤 때 군살빼기가 과감히 이뤄져야 한다.

군살빼기의 형태는 두가지다.

하나는 새로운 제품을 가급적 내놓지 않는 모델절약형과 버블기능은 빼고 기본 기능을 강조한 기본 충실형이다.

일본의 경우 마쓰시타전기는 버블붕괴 이후 불황의 골이 깊어진 지난 93년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각종 가전제품 6천가지를 1천가지로 줄이는 작업을 벌였다.

당시 히타치사도 TV 모델 종류를 절반으로 줄였다.

우리나라의 동양제과도 자사상표 가운데 20%의 제품으로 80%의 매출을 올린다는 핵심 브랜드 전략을 구사, 상당한 순익을 냈다.

기본 충실형도 소비자들에게 호소력을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자동차업체 닛산은 전자 작동기에 들어가는 각종 부품을 40%까지 줄였다.

기본충실 전략아래 92년 선보인 소형자동차 "마치"는 불황에도 큰 인기를 끌었다.

엔진의 배기량을 줄이고 각종 보조장치는 과감히 생략했으며 속도감보다는 승차감에 주안점을 뒀다.

가격은 당연히 낮아졌다.

발상의 전환을 이룩하면 어떠한 역경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교훈은 비단 일본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강창동 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