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길 <청주대 객원교수.언론정보학>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 1학년 3학기 중 2학기가 끝나면 한 학생의 장래가 결정된다.

대학에 진학해 전문직으로 나갈 것인지,직업학교로 가서 사회진출을 앞당길지 결판이 나는 것이다.

이 결정은 교사 학생 학부모 3자 사이에 이루어진다.

이때 결정적인 자료는 초등학교 5년,중학교 4년을 포함한 10여년 교육기간의 학업 성적이다.

프랑스에선 대학진학과 직업학교행 판정에 ''불복''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것은 물론 성적을 교사가 알고,학부모가 알고,학생 자신이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학교에서 치러지는 각종 시험이 학생의 실력을 정확하게 평가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해외 근무시절,아이를 현지 학교에 보내면서 직접 목격한 프랑스 중학교 성적은 매우 엄격했다.

주요과목 불어 영어 수학 과학 역사지리는 각 20점씩 모두 1백점인데,특히 수학 점수에서 변별력이 크게 나타나곤 했다.

수학 점수는 20점 만점에 보통 10점이 넘으면 우수할 정도로 짜다.

한반에서 10점 이상 받는 학생은 한두명밖에 없고 한자리 숫자의 점수가 대부분이다.

당시 프랑스 학교에서는 다른 과목도 대체로 단답식 보다는 주관식 문제로 시험을 치른다.

특히 수학은 답이 맞았더라도 답을 푸는 방식을 보고 채점하기 때문에 아무리 쉬운 문제라도 얼마든지 변별력을 가질 수 있다.

15년 전 파리 15구 콜레주 모질리아니 중학교 수학 선생님 마드모아젤 푸케는 엄격한 선생이었다.

자기반 학생 중 수학 최고점수를 13점 밖에 안주었다.

이유인즉 13점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미래의 우수한 학생들을 위해 여지를 남겨둔다는 것이다.

여기서 해묵은 프랑스 교육제도를 또 벤치마킹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교육에서 학력평가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한 인간을 건전한 사회성원으로 키우는 일과, 전문 지식의 훈련을 통해 창조적인 전문인으로 길러내는 일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그래서 유럽 국가들 중엔 아직도 정부가 별도의 장관이 지휘하는 교육부와 대학부를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나라들이 있다.

교육부는 보통 12년 걸리는 초·중등교육에 해당하는 사회화(socialization)교육을 맡고,대학부는 그 이후 대학과 대학원의 전문교육을 맡는다.

여기서 대학교육은 결국 엘리트 교육이다.

창조적 전문인은 우수한 학력을 바탕으로 선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대학교육에 대한 열의가 높다.

해마다 80만명의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대학 진학을 원한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대학입시를 향해 타오른다.

대학입시는 바로 우리의 중등교육,아니 초등교육까지 지배한다고 볼 수 있다.

학부모들은 대학입시를 위해 초등학교부터 각 단계마다 엄청난 사(私)교육비 지불조차 마다하지 않는 형편이다.

우리나라 초등학교에서는 웬만한 시험에서 만점을 노려야 한다.

한반의 60%가 만점을 받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적어도 학력시험으로는 우수학생 평가하기를 포기한 교육이다.

다시 말하면 절반도 안되는 열등학생들의 열등 정도만 평가하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만점 평가는 매우 위험하다.

특히 선다형 객관식시험 문제의 만점은 더욱 그렇다.

언어나 사회영역에서 선다형 정답이 문제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우수한 학생이 자칫 부주의로 한 문제를 틀렸을 때,우리 초등학교에서는 졸지에 40% 열등생 그룹에 떨어질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의 만점문화는 중등교육을 거쳐 대학입학시험까지 지배한다.

국가가 관리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난이도는 이미 오래전부터 문제돼 왔다.

마침내 200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4백점 만점을 맞은 학생이 66명이나 나왔다.

3백80점 이상 고득점자가 3만5천명이 넘어 이른바 일류대학들은 수능성적으로 합격자 변별이 어렵게 됐다.

한국과 같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이기려면 ''순발력과 눈치도 실력''이란 역설이 통할지 모른다.

그러나 창조적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하는 세계시장에서,만점문화로 양성된 엘리트 전문인들이 과연 국제경쟁력을 가질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