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불능자다.

밤마다 눈이 벌건채 포르노사이트를 뒤지며 성적 허기를 달래지만 실제상황에가서는 맥없이 고개를 숙이고 만다.

감각이 마비된 새끼 손가락처럼 일상에 무감각해진채 막연히 탈출을 꿈꾼다.

그녀역시 불능자다.

무기력한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 그리고 소통이 단절된 집에서 숨막힘을 이기지 못한 그녀는 죽음으로 권태를 잊기로 한다.

"정사"를 만든 이재용 감독의 두번째 작품인 "순애보"는 인터넷을 통해 이어진 서울남자와 도쿄여자의 사랑이야기다.

로맨스의 주인공은 동사무소 총각 우인(이정재)과 인터넷 포르노사이트에서 일하는 재수생 아야(다치바나 미사토).서울과 도쿄를 축으로 두개의 영화가 진행되다가 합일된다.

"멜로"의 큰틀안에는 웃지 않고는 못배길 유머와 현대인의 권태와 소통단절의 슬픔이 진하게 녹아있다.

감독은 평범한 일상에서 살아있는 표정을 포착하는 솜씨를 여지없이 과시한다.

시선이 잘 닫지 않는 곳까지 공을 들인 디테일은 주제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구석구석 숨겨둔 감독의 메시지를 찾아내는 재미를 준다.

실제 "김민희"의 광고판을 비추거나 과거 사진에서 우인과 아야의 인연을 보여주는데서는 남다른 유머감각과 재치가 빛난다.

"조연들의 사연에도 귀기울여 달라"는 그의 주문대로 극한 절망속에서도 희망의 화신처럼 보이는 리에,게이샤로 살았던 아야 할머니,화려함 뒤에 슬픔을 감춘 미아(김민희)등의 이야기가 일관적인 주제를 지향한다.

하지만 도시적 감성으로 비춰진 깔끔한 화면속에 인물들은 깊은 속까지 열어보이진 않는 까닭에 그들의 고통에 조응할 여지는 없다.

"순애보"가 주는 또다른 기쁨은 배우 이정재의 발견이다.

"호섭이"처럼 앞머리를 짧게 자르고 구부정한 어깨에 졸린눈으로 나타난 그는 한점 흐트러짐없는 아르마니풍 패션 아이콘으로서의 모습을 완벽하게 지워냈다.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