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각국의 경제불안이 깊어지고 또 정쟁과 사회적 분규 사태가 심화되는 와중에서도 아시아 지역민들의 전반적 공동체 의식은 오히려 더 높아지는 모습이다.

우선 정부차원의 경우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3(한·중·일)국 정상들은 97년부터 지난주까지 네차례에 걸친 정상회담을 거듭하며 역내 경제협력 기반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이들은 특히 지난 5월 태국에서 열린 아세안+3 각료회담에서 역내 국가간 통화스와프합의,이른바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를 이끌어냈다.

재계 차원의 경우 지난 6일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만공상협진회가 ''한·대만경제협력위원회 합동회의''를 성황리에 치른 것을 계기로 9년만에 양국 대기업 및 중견기업들간의 협력관계가 활성화되게 됐다.

일본과의 관계도 최근 전경련 조사결과 국내 기업들은 69%가 정부차원의 한·일자유무역협정 추진을 찬성해 종래 일본 기업들을 두려운 경쟁자로 보던 인식이 크게 바뀌었음이 나타났다.

그런가 하면 IT(정보기술)업계는 지난 22일 한·중·일 3국간 e비즈니스 산업협력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구체적 방안까지 제시했다.

이밖에 지난 1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38차 연례 한·일언론인세미나''에선 양국 중진 언론인들 역시 한·중·일 3국간의 경제협력 필요성에 인식을 같이 했고 이런 인식은 이제 문화·출판계로 계속 확대돼 나가고 있다.

◆아시아 공동체 의식의 부상 원인= 그러면 이렇게 아시아 지역민들,그 중에서도 특히 동아시아 3국의 협력의향이 커지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에 대해선 일본 대장성 다카토시 이토 국제담당 차관보가 잘 설명했다.

그는 지난 21일 파이낸셜 타임스 기고문에서 이를 네가지로 설명했다.

즉 WTO(세계무역기구)체제가 한계에 이른데다 아시아통화위기 재발을 방지하는 데 IMF(국제통화기금)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유럽대륙과 북미대륙이 각기 자유무역체제를 구축해 아시아만 배제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졌고 역내 교역 비중 증대로 아시아가 나름대로의 경제적 자생력을 갖추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역시''불안감''일 것이다.

비단 아시아만이 국제 무대에서 배제될 지 모른다는 수준이 아니라 아시아가 총체적인 경제위기를 겪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특히 서방 언론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세계 2위 경제대국 일본의 경제적 취약점과 세계 최대 인구대국인 중국의 농민폭동 사례 등 사회적 취약점을 대서특필해 불안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서방에 대한 피해의식이 적지 않은 이들은 이에 상호 협력을 ''대안''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대비책''으로라도 서두르게 됐다.

◆아시아 협력의 양대 과제=그렇다면 아시아 역내 협력의 궁극적 종착점은 무엇인가.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조화로운 역내 산업구조 재편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지난 수십년 동안 ''일본처럼 되겠다''며 일본을 따라 하다 결국 다 비슷비슷한 산업구조를 갖추게 됐다.

그 결과 주요 산업분야에서 모두 엄청난 ''과잉 중복투자''를 빚고 말았다.

ING베어링은 인도네시아의 산업설비 중 무려 63%,한국 61%,태국 41%,말레이시아의 경우 37%가 과잉생산설비라고 추산하고 있을 정도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가는 공멸에 이를 뿐이다.

이제는 ''나홀로 투자''가 아닌 ''더불어 투자''를 통해 공존공영을 모색해야 한다.

둘째는 금융협력이다.

미국 브라운대의 로버트 웨이드 교수는 만약 일본 중국 홍콩 싱가포르 등이 조금씩만 자금을 갹출해 1천억달러 통화기금만 구축해도 아시아의 외환위기를 대부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외채가 많은 한국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빚을 모두 합쳐도 4천억달러에 불과하며 그나마 저리 장기부채를 제외하면 3천억달러 정도라고 추산한다.

이 정도라면 ''1천억달러의 예비금''으로 비상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아세안+3국의 총 외환보유고는 그 어떤 지역보다 훨씬 많은 8천억달러에 이른다고 지적하고,그런데도 아시아 국민들은 어리석게 이런 돈을 미국에 약 5%의 싼 이자로 빌려준 뒤 정작 자신은 서방금융기관이나 투자자들로부터 10% 이상의 비싼 이자를 물며 자금을 재융통해 쓰고 있다고 지적한다.

신동욱 전문위원.경영博 shin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