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풀린 원화 환율이 천장을 모른 채 치솟았다.

환율 폭등은 주가 및 금리에도 타격을 가해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을 증폭시키는 등 시장에선 위기감이 극도로 고조되는 모습이다.

이같은 불안심리를 반영, 원화환율의 하루 변동폭이 20원을 넘는 널뛰기 장세가 연출됐다.

외환시장의 원.달러 환율이 폭등하면서 은행권을 통한 일반인들의 달러 매입가도 달러당 1천2백원대를 넘어섰다.

이날 일반인들의 달러 매입가(종가)는 전날보다 18원28전 오른 1천2백13원87전.

일반인들이 24일 은행 영업시작 시간인 오전 9시30분에 달러를 사려면 이 값에 매입해야 한다.

◆ 패닉상태에 빠진 외환시장 =이날 원화 환율은 역외선물환 시장(NDF)에서의 달러 강세 여파로 전날보다 1원10전 오른 달러당 1천1백78원에 개장한 뒤 잠시 당국의 의지를 시험하는 탐색전을 벌였다.

이 덕택에 원화 환율은 1천1백73원대까지 밀리기도 했다.

곧이어 당국의 시장 개입에 대한 ''경계경보''가 해제되자 환율은 급등세로 돌변했다.

단숨에 1차 저지선으로 여겨졌던 달러당 1천1백80원선을 돌파한데 이어 1천1백90원의 벽마저 깨버렸다.

달러 매수공세를 벌여온 역외세력들은 쾌재를 불렀다.

반면 정부의 개입에 장단을 맞춰 간간이 달러를 내놓은 국내 은행들은 대부분 큰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장에선 은행들도 달러 사자에 열을 올렸다.

여기에 달러를 사두지 않으면 낭패를 볼 것이란 기업들의 가수요가 붙으면서 시장은 이성을 잃은 채 패닉상태에 빠졌다.

시중은행 한 딜러는 "오전중 당국의 개입을 예상하고 달러를 팔 생각을 가졌던 기업들도 환율이 폭등세로 돌변하자 성급히 매물을 거둬들였다"고 전했다.

한동안 천장을 모르고 치솟던 원화 환율은 오후 4시 재경부의 외환시장 안정관련 기자간담회를 앞두고 다시 1천1백80원대로 하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국의 발표에 알맹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자 환율은 다시 1천1백93원으로 치솟았다.

◆ 당국의 숨은 의도 =재정경제부와 한은은 이날 오후 기자 간담회에서 환율정책에 대한 숨은 의도를 내비쳤다.

재경부 김용덕 국장은 "대만달러는 현재 전년말 대비 4.5% 절하됐고 일본 엔화는 7.2%, 필리핀 페소화는 18%, 호주 달러화는 20% 절하됐다"고 말했다.

다른 동남아 국가들의 통화가치의 하락수준에 비해 원화는 아직 덜 떨어졌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와 관련,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당국은 대만달러의 절하수준인 달러당 1천2백원선까지 원화환율 상승을 용인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당국이 환율폭등을 용인하는 것은 수출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경기가 하강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경제의 유일한 버팀목인 수출을 살려 경기급락을 막는데 정책의 무게중심을 둔다는게 정부 의도라는 얘기다.

메릴린치증권도 이날 ''한국경제 분석자료''를 통해 "한국 정부가 환율상승을 경기 급락을 막는 완충제로 활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환율상승을 묵인하는 분위기"라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외환딜러들은 "당국의 본격적인 시장개입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24일 환율은 1천2백원선에 올라설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