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을 살리는 과정에서 현대그룹의 핵분열이 당초 계획보다 2년이상 앞당겨지게 됐다.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20일 건설자구안을 발표하면서 전자와 중공업의 조기분리를 약속함에 따라 당초 2003년말까지로 예정됐던 현대그룹의 5개 핵심(자동차 전자 중공업 건설 금융) 소그룹 분할작업은 늦어도 내년말까지 완료될 전망이다.

현대중공업은 이미 정몽준 고문의 관할에 들어간지 오래됐기 때문에 현대그룹은 전자가 완전 분리될 예정인 내년 상반기에 사실상 해체될 것으로 보인다.

◆전망=현대건설 소그룹은 정몽헌 회장의 일선복귀 이후 경영체제를 재구축,대북사업과 해외건설 사업에 주력할 전망이다.

대북사업은 현대건설 현대아산 현대상선이 주축을 이루고 국내외 건설사업은 현대건설 고려산업개발이 각각 맡을 예정이다.

정주영 전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이 각각 2천6백억원과 4백억원을 현대건설에 출자할 경우 현대건설의 대주주 구성은 △정주영 15% △정몽헌 8% △아산재단 1%등으로 바뀌게 된다.

외관상 정주영씨의 지분이 크게 높아졌지만 그의 현재 건강상태로 보아 사실상 정몽헌 회장이 경영을 책임질 것이 틀림없다.

현대증권을 필두로 한 금융소그룹은 AIG의 자금이 들어오는대로 현대그룹이 경영권을 포기한다는 입장이어서 계열분리는 시간문제가 됐다.

내년 상반기중 계열분리될 전자 소그룹은 당장 경영권 구도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향후 현대상선(9.7%)과 현대중공업(7.1%)이 지분을 낮추는 과정에서 새로운 주인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전자 관계자는 "계열분리되면 현대그룹의 동일인 여신한도에서 제외돼 자금운용면에서 다소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계열분리 시기가 내년말로 잡힌 중공업 소그룹은 내심 불만이지만 실질적으로 계열분리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대상선이 보유한 중공업 지분(12.46%)만 해소되면 언제든지 분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앞으로도 계열사에 대한 신규 지급보증이나 추가출자는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분리 이후의 경영권은 사실상 정몽준 고문(10.34%)이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회사측은 계열분리 즈음해서 23,25%의 자사주 지분을 적절한 선에서 우호세력에 매각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계에 미치는 파장=현대그룹의 조기분할은 이른바 선단식 경영을 펼쳐온 한국 대기업그룹의 경영시스템에 일대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건설 자구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계열분리된 자동차는 물론 아직 명목상 계열로 남아있는 중공업이 끝내 지원을 거부한 점은 선단식경영의 종말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특히 건설의 핵심계열인 현대상선이 그룹의 자금지원 ''명령''에 반기를 든 것은 과거 대기업체질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로 전체 재계가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찬근 인천대 교수는 "선단식 경영은 장점도 많지만 계열사간 연결고리가 약하면 한꺼번에 무너지는 속성이 있다"며 "현대그룹의 조기 계열분리는 한국에 주주중심의 경영체제가 본격화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일훈·김용준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