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길부 < 건설교통부 차관 k10182@moct.go.kr >

자연의 위력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원시사회에서는 자연숭배의 토속신앙이 싹트고 원시종교가 발생했다.

늘 산과 가까이 있는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숭산사상(崇山思想)이 있어 산을 신성시하고 거기에 신령이 있다고 믿었다.

산신(山神)은 인간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며 농사의 풍·흉이나 기후까지도 좌우한다고 여겼고 자식을 못 낳은 여자는 산에 빌어 자식을 얻는다고 믿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 민족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도 산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선인들은 신(神)인 하늘과 인간인 땅이 만나는 산 봉우리를 신성한 곳으로 여겼다.

고을마다 진산(鎭山)과 주산(主山)에 산신을 모시는 국사당(國師堂)을 세우고,이 봉우리를 국사봉(國師峰)이라고 했다.

조선 태조도 서울에 도읍을 정한 뒤 경복궁 뒤편인 북쪽에는 북악신사(北岳神祠),그 앞쪽인 남산에는 목멱신사(木覓神祠)를 세워 서울의 수호신인 호신신장(護身神將)을 그 꼭대기에 모시고,산의 정기를 모아 국운을 지키는 제사를 임금이 직접 지냈다.

이외에도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는 2백여개의 국사봉 있었는데 가뭄이 들거나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고을의 장인들이 국사봉에 모여 극진한 제(祭)를 올렸다.

이렇듯 산을 신성시하고 아끼는 우리 민족감정은 최근 환경보전 운동으로 다시 표출되고 있다.

백두대간을 고스란히 지키자는 운동이나 댐을 건설하지 말자는 국민감정의 이면에는 다분히 우리 민족의 숭산사상이 깃들여 있다.

알프스산 스키장에 설치된 수㎞에 달하는 케이블카를 보고 감탄하면서도 북한산에는 결코 케이블카가 들어설 수 없다는 것은,단순히 자연경관 보호라기보다는 북한산의 정기를 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 국토는 4분의 3이 산이다.

나머지는 논과 밭….

앞으로 계속해서 집도 짓고 공장도 짓고 도로도 놓아야 할텐데 필요한 땅을 어디서 마련해야 할지 걱정이다.

논과 밭은 함부로 쓸 수 없다.

그렇다고 산을 함부로 해할 수도 없으니.

옛날에 비해 사람도 늘고 생활수준도 달라졌으니 산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당연히 바꿔야겠다.

신성(神聖)과 경외(敬畏)에만 머무르지 말고 친근(親近)과 포용(包容)의 자세로 산을 바라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