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선거제도개혁 논쟁으로 뜨겁다.

''득표에 이기고도 선거에 질 수 있는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선거인단(electoral college)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놓고 벌이는 ''개혁과 반 개혁간''의 논쟁이다.

미국 국부(國父)들이 만든 선거인단제도는 각주 투표에서 단 한 표라도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그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 표를 ''독식''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특유의 선거제도에 따라 득표에 지고도 선거에 이겨 대통령이 된 사람은 존 퀸시 애덤스(1824년),러더포드 헤이즈(1876년), 그리고 벤자민 해리슨(1888년) 등이 있다.

그간 미국의 정치환경과 시대배경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고 따라서 이같은 변화에 순응,주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는 직접민주주의 정신을 살려야 할 때라는 게 선거제도 개혁론자들의 주장이다.

유례 없는 박빙을 보인 이번 대통령선거가 이같은 논쟁에 불을 지른 것은 물론이다.

현 상황대로라면 재검표를 실시하고 있는 플로리다에 배정된 25표를 조지 부시후보가 모두 차지하더라도 그의 선거인단 득표수는 2백71표에 불과하다.

당선권인 2백70표보다 1표가 많을 뿐이다.

따라서 부시를 지지해야 할 선거인단중 단 두 사람만 딴 마음을 먹고 앨 고어후보를 지지해버리면 대통령직의 주인은 쉽게 바뀌어 버린다.

과거 선거인단이 유권자들이 선택한 후보에게 투표를 하지 않은 경우는 간혹 있었다.

이상한 일이지만 미국 헌법과 연방법에는 선거인단을 어떻게 운영해야 한다든가 하는 자세한 규정은 따로 없다.

다만 선거인단의 지명시기(11월 첫 번째 월요일 다음의 화요일)만을 설정해 놓고 있을 뿐이다.

이같은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몇몇 주들은 "반드시 주민들이 선택한 후보에게 표를 던져야 한다"는 강제규정을 주법에 따로 두고 있다.

버지니아 메릴랜드등 24개주와 워싱턴DC가 그들이다.

따라서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26개 주를 대표하는 선거인단은 자기의 소신에 따라 표를 던질 수도 있도록 되어있다.

개혁파가 이를 문제삼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반개혁파의 반박 또한 만만치 않다.

이들은 선거인단제도가 직접민주주의 정신보다는 각 주의 독립성을 보장하자는 데 더 큰 목적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선거인단을 인구비례위주로 배정하다 보면 인구가 많은 주가 연방정부의 정책과 예산을 독점하고 좌지우지할 여지가 많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선거인단제도라는 설명이다.

각 주의 선거인단 숫자는 각 주가 보유한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의 수를 합친 숫자와 같다.

와이오밍 델라웨어 알래스카 등은 하원의원이 한명에 불과하지만 상원의원은 두명이나 된다.

반면 캘리포니아는 하원의원이 52명이나 되지만 상원의원은 다른 주와 같이 2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선거인단제도는 각 주에 일정부분 목소리를 안배하고 이런 목소리가 선거에 반영되게 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선거인단제도가 없었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재검표는 플로리다뿐 아니라 모든 주에서도 실시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선거인단제도 때문에 이런 번잡스런 수고는 안해도 되는 것은 분명 선거인단제도의 장점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어찌됐건 이번 선거는 바둑으로 치면 ''반집으로 승부가 갈린'' 보기드문 게임이었다.

"슈퍼 볼(미식축구결승전)보다도 더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사람도 있다.

때때로 제도적 허점이 보기드문 흥미거리를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다는 역설을 이번 선거는 보여주었다.

양봉진 워싱턴 특파원 yangbong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