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으로도 부실기업은 언제나 생겨난다.

채권자는 기업이 희망 없다고 판단하면 여신을 회수할 것이고,모든 채권자가 같은 조치를 취하면 곧 퇴출로 연결된다.

정상적인 시장경제라면 은행 등 금융기관은 기업을 전문가적 안목으로 평가하고 그때그때 가차없이 처리한다.

안 그러다가는 금융기관이 망한다.

관치금융에 길들여져 온 우리 경제의 형편은 다르다.

시장기능만으로는 자금을 전략산업 부문에 조달하지 못해서 생긴 것이 관치금융이다.

수익성이 나빠도 육성대상이면 항상 자금이 나갔다.

업무실적은 상관없었다.

이 와중에서 개인적·정경유착적 비리도 끼여들었다.

어쨌든 이미 지원한 엄청난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라도 퇴출시킬 수가 없었다.

오히려 천문학적 자금을 지원받은 업체일수록 추가지원이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다.

대마는 골병은 들지라도 결코 죽지 않는다.

부실기업을 살리기 위한 대출 때문에 부실규모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려 온 금융기관들이 결코 무사할 리 없었다.

금융기관은 국내외 지불을 보증하고 매개하는 경제운용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다.

신용을 잃을대로 잃은 국내 은행들이 결국 이 기능의 기본적인 역할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 상태로는 경제의 견실한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공적자금 투입으로 부실을 메우면서 동시에 부실기업을 대대적으로 정리해야 하는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이다.

결국 대우까지 무너지면서 우리 경제는 부실기업 처리에 존망을 걸고 있다.

그리고 또 한번 무더기로 부실 기업들을 퇴출시키는 사태가 벌어졌다.

물론 갑자기 수많은 부실기업들이 새로 생겨난 것은 아니다.

그 동안 못하다가 지금 와서야 퇴출조치를 취했을 따름이다.

손절매의 시기를 잃고 빈털터리가 된 주식 투자자처럼 혹시나 소생을 바라면서 계속 자금을 대다가 엄청난 추가부실만 떠안은 채 단안을 내린 것이다.

결정이 쉽지 않았겠지만 비판의 소리도 크다.

일시에 퇴출되는 기업들이 많은 만큼 사회적인 파장과 부작용은 더욱 클 것이다.

선정기준에 대하여 불만과 의문도 많은 것 같다.

그러나 퇴출이 과연 현실로 다가설 수 있다는 메시지의 효과는 인정하는 것이 우리 모두를 위해 좋을 것이다.

다만 현대건설의 처리와 관련해서는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자구책을 촉구하는 당국의 자세는 확고하다.

그러나 ''총 부채규모가 연간 매출액보다 크므로 낮추어야 한다''는 분석에는 이의가 있을 수도 있다.

결손을 무릅쓰고 추진한 대북사업이 민족 화해를 앞당긴 공을 무시한 데 대한 섭섭함도 있을 수 있다.

현대건설에 대한 여신 회수조치가 몰고올 파괴력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만약 현대측이 반발할 때 과연 실제로 여신중단이 뒤따를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여 정부가 한번 선포한 조치를 뒤집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 나라 기업풍토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남의 돈으로 기업활동을 벌인다는 것이다.

원래 돈이 없으니 처음부터 빌렸다.

사업이 너무 빨리 커지므로 번 돈만으로는 뒷감당이 안되어 다시 빌려야 한다.

또 한편으로는 주식을 발행하여 증자한다.

과거 60∼70년대에는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잘사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지난 1972년 ''8·3 사채동결 조치''때만 해도 ''내'' 돈을 ''내'' 기업에 고리채로 빌려주고 이자를 뽑는 바람에 나는 돈벌고 내 기업은 부실화한 사례가 많았다.

그 때는 내 기업의 미래를 나도 확신하지 못할 만큼 불안한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이 어떤 시대이고 현대건설이 어떤 기업인가.

한강변의 기적을 세계가 경탄하고 현대건설은 이것을 일군 주역중의 주역이다.

내 돈을 내 기업에 넣을 만한 시대이고 기업이다.

shoonlee@snu.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