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채권단으로부터 퇴출 보류판정을 받은 현대건설은 부도처리후 법정관리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는 일단 벗어났다.

그러나 채권단이 신규대출을 중단하고 이근영 금감위원장이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경우 법정관리가 원칙"이라고 밝히면서 긴장과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현대측은 이날 채권단의 결정을 사실상 "조건부 법정관리 유예"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회생과 퇴출의 경계속에서 살얼음판을 걷는 경영이 불가피해졌다고 보고있다.

현대건설의 진로를 더욱 불명확하게 하는 것은 정부의 정책방향이다.

정부는 일단 "회사는 살린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기존 경영권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대그룹 내에서는 사재출자를 하고도 회사를 잃게 되는 꼴이 돼버리는 것이 아니냐며 불안과 반발이 교차하고 있다.

<>자구안 제대로 이행될까=우선 3천1백만평에 달하는 서산간척지 매각은 여전히 매각가격을 둘러싸고 정부와 현대그룹간 의견차가 크다.

현대는 6천7백억원의 자체 감정가에서 2000년 공시지가인 3천6백21억원으로 매각할 수 있다는 선까지 물러섰지만 정부는 공시지가의 3분의 2 수준으로 매입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 정주영 전명예회장과 정몽헌회장이 최대 1천5백여억원에 달하는 보유 계열사지분을 처분해 사재를 출자하겠다는 계획도 현재와 같은 증시여건에서 살 곳이 별로 없는 만큼 제대로 이뤄질 지 장담할 수 없다.

특히 정 전명예회장의 자동차지분의 경우 현대자동차 매입설도 나돌았으나 현대자동차가 계열분리과정에서 공정거래위원회에 "현재의 지분에 변동이 없도록 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제출해 시장에 매각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현대전자 현대상선 현대중공업 등 현대그룹내 계열사들과 계열분리된 현대자동차및 정씨 일가 친족들의 위성그룹 계열사 등의 지원이 거론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실현가능성이 적은 것이 문제다.

금융권 만기연장 약속이 제대로 지켜질지도 변수다.

지난 7월 26일 12개 은행장들은 당시 이헌재 재경부장관의 독려로 현대건설에 대한 일반대출과 회사채 기업어음 등 차입금을 만기연장해주기로 결의했었다.

그러나 현대건설이 유동성위기에 빠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일부 은행의 차입금 상환 요구였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현대의 향후 행보=현대그룹은 모기업인 현대건설을 반드시 지킨다는 자세다.

성역시됐던 오너 일가의 사재출자에 대해 정부와 채권은행단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그러나 출자전환이든 법정관리든 정부의 경영권 박탈 움직임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재출자를 하는 만큼 연말까지로 시한을 둘 것이 아니라 일정기간 맡겨둬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유동성위기가 앞으로 없을 것이란 점에 대해서는 장담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그룹 일각에서는 최악의 경우 현대그룹이 당초 오는 2002년 이후 하기로 했던 현대건설의 계열분리를 앞당겨 다른 계열사와 단절시키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것이 실현될 경우 현대중공업 등 다른 계열사의 계열분리도 한층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희수 기자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