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이 2일 저녁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을 극비리에 만났다.

수행비서도 퇴근시킨 후 단신으로 모처에서 이제 막 미국에서 귀국한 정 회장을 만났다.

3일 일부 언론에서 이를 두고 ''조건부 회생 합의''설로 보도하자 금감위는 즉각 부인에 나섰다.

이 위원장과 정 회장이 모종의 합의를 했다면 이는 ''채권단에 의한,채권단을 위한,채권단의 퇴출기업 판정''이라는 대전제가 깨지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정부는 부실판정 기준만 제시하고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판정하게 된다"고 강조해왔다.

''시장자율''이라는 대전제를 꼭 지키겠다는 의지를 누차 반복했다.

금감위측은 오전 9시께 기자실에 들러 부산하게 해명자료를 돌렸다.

처음에는 이 위원장이 정 회장을 만난 사실 자체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다 기자들이 위원장을 찾아가 사실 관계를 확인한 후에는 "조건부 합의사실은 없다"며 한발 뒤로 뺐다.

그러나 시장은 곧바로 반응했다.

현대건설주는 상한가를 쳤다.

이 위원장이 "현대건설에 유동성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법정관리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지만 현대건설에 대한 매수주문은 끊이질 않았다.

''시장자율''을 외치던 정부의 시장개입사례는 이 뿐만이 아니다.

금융감독원은 은행에 가이드라인만 주기로 했으나 실제로는 세가지 기준외에도 10여개 항목의 세부판정기준을 비공식으로 전달했다.

지난 21일에는 채권은행들 앞으로 공문을 발송했다.

느슨하게 부실판정을 하지 말라는 경고장이었다.

한 고위 관계자는 "정부의 뜻을 따르지 않는 일부 은행들은 앞으로 검사·감독을 강도높게 해서 그만한 불이익을 받도록 해주겠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처럼 정부가 공식·비공식적으로 개입한 데에는 정부의 ''관치 습관''도 있지만 금융기관들의 박약한 ''자율의지''도 한몫 했다는 지적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정부나 금융기관이나 모두 관치의 타성에서 벗어나려면 아직 요원한 것같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박수진 경제부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