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사는 아들이 아버지의 부고를 받고 고향을 찾는다. 어머니는 전통을 따라 걸어서 운구를 하자고 고집한다. 아들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지순한 사랑을 추억하며 그 뜻에 따른다"

장이모 감독의 최신작인 "집으로 가는길"(The Road Home.4일개봉)의 대강이다.

"내 아버지 어머니"(我的父親母親)라는 중국어 제목은 줄거리를 대부분 담고 있는 셈이다.

50년대 시골학교에 교사로 부임한 총각 아버지와 마을에서 제일 예쁜 처녀였던 어머니의 순박한 사랑을 보여주는게 거의 전부다.

시작은 흑백으로 칠해진 "현재"다.

낡아빠진 다큐멘터리처럼 단조롭고 낯선 현재가 과거로 넘어가는 순간 화면은 봄꽃처럼 화사한 색깔을 입는다.

부드러운 황토로 덮인 너른벌이나 노랗게 물든 가을나무,얼기설기 엮어놓은 나무담장과 담벽에 걸린 누런 호박뭉치들.친근하고 아름다운 시골 풍경은 그대로 한폭의 수채화가 된다.

맑고 투명한 영상은 감독이 "붉은 수수밭"같은 작품에서 보여준 불타는듯 농염하고 장식적인 색채와는 또다른 여운을 남긴다.

순정의 주인공은 장즈이."제2의 궁리"라는 그는 데뷔작에서부터 놀라운 생기를 발한다.

사모하는 총각선생과 마주치기 위해 일부러 주변을 서성대고 그가 준 머리핀을 꽂으며 미소짓는 얼굴은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시골소녀다.

자동차를 타고 어디론지 떠나는 선생을 쫓아 뛰는 모습은 두고두고 떠오를 만큼 매력적이다.

남자가 좋아하는 만두가 담긴 그릇을 품에 안은채 양갈래로 땋아내린 머리채를 펄럭이며 내달리는 그는 솜을 두둑이 넣어 지은 두리뭉실한 저고리에 몸빼를 입고도 보석처럼 빛이난다.

허전할 만큼 단순한 이야기속에는 사실 풍부한 은유와 상징이 들어있다.

아버지의 시신을 옮겨오는 길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연결하는 동시에 농촌과 도시,과거와 현재를 잇는 통로다.

수줍던 첫사랑을 더듬는 추억속에는 잃어버린 순수나 사라져가는 전통이 함께 되살아난다.

"배움"이 존경받았고 "희망"을 믿던 그때.순수한 로맨스는 아름다웠던 시절을 회고하는 황홀한 찬가이자 그리움의 연가로 확장된다.

중국 5세대 감독의 대표주자로 거장반열에 오른 감독은 최근 "책상서랍속의 동화"(98년)를 비롯해 과거지향적이고 동화적인 영화에 치중하면서 치열한 문제의식을 잃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감독은 "천박한 상업영화가 판치는 중국영화 시장에 대한 반동의 표현이며 격동의 세기를 사는 평범한 중국인들의 생각과 꿈"이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관객들로선 일단 장인이 빚어낸 결고운 정서에 흠씬 젖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기쁨이다.

쪼글쪼글해진 얼굴로 "네 아버지 목소리는 40년을 들어왔지만 한번도 물리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어머니나 어머니를 위해 마지막교단에 선 아들이 전하는 콧날 시큰한 감동은 행복한 보너스다.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