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나이행 티켓을 잡아라"

요즘 워싱턴에 나와있는 한국특파원들의 숙제다.

브루나이는 11월15일부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가 열리는 곳이다.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APEC회의를 위해 브루나이를 방문한 다음 베트남으로 간다.

이에따라 내달 11일 아시아순방길에 오른다.

평소같으면 특파원들중 누구도 관심을 가질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다르다.

클린턴 대통령이 귀국길에 북한을 찾을지 모른다는 추측 때문이다.

''브루나이행 비행기에 미리 올라가 앉아 있어야 평양행으로 이어지지 않겠느냐''는 도박심리가 특파원들 사이에 작용하고 있다.

평양행 티켓은 그 희소성 때문에 이제 워싱턴에서도 프리미엄을 줘야 살 수 있는 물건이다.

그러니 기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를 챙기기 위해 혈안이 돼있다.

브루나이행은 결국 평양입성을 위한 떡밥인 셈이다.

문제는 경비다.

백악관은 비행기와 전세버스등 교통비로만 1만5천달러를 책정해 놓고 있다.

호화로운 하와이체류 일정을 포함,최고급 호텔을 이용하는 숙박비로 5천달러가 추가된다.

기자 한 명당 족히 2만달러이상이 드는 취재다.

신청을 하려면 현금 1만달러를 백악관에 예치해야 한다.

또 이곳 시간으로 27일까지 취소를 하지 않을 경우 여행을 하든 안하든 10일간의 모든 여행경비가 청구된다.

평양행이 신기루로 끝나면 2만달러는 고스란히 날아간다.

백악관은 아직까지 클린턴 대통령의 북한방문에 대해 어떤 언질도 주지 않고 있다.

평양행이 이루어지더라도 북한이 브루나이까지 날아간 성의를 기득권으로 인정해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11월 7일이면 미국에는 새 대통령이 탄생한다.

북한문제는 새 대통령이 다루어야 할 문제다.

임기만료를 두 달여 남겨놓고 클린턴 대통령이 북한문제를 일괄 타결하려는 자세는 옳지 않다는 것이 미국언론의 반응이다.

북한의 기본적 자세가 변했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졸속한 관계설정은 시기상조라는 시각이 강하다.

이같은 여론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이 추진되고 있다는 징후는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이 브루나이,베트남에 이어 북한으로 바로 간다는 보장도 없다.

추수감사절 휴가를 위해 예정대로 20일 미국으로 곧장 날아오고 북한방문은 12월중에 할 것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한국기자들이 브루나이행 비행기를 타더라도 북한이 도중에서 비행기를 세우고 일부 마음에 안드는 남한기자들을 내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결국 브루나이행 티켓은 수익률이 극히 불투명한 도박이거나 투기에 불과하다.

이때문에 워싱턴의 한국특파원들이 최근 회의를 소집했다.

합심해서 브루나이 떡밥을 뿌리지 말자고 결의했다.

모두 단결해서 브루나이행을 외면하면 백악관이 북한 가는 비행기 좌석중 한국기자들을 위해 최소한 몇자리라도 만들어 주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왔다.

북한의 선별허용도 싫지만 나라살림이 어려우니 우리라도 달러를 절약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발언도 있었다.

모두 찬성했다.

그러나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극히 일부가 브루나이행을 신청하겠다고 고집했다.

미국 대통령 전용기도 타보고 싶고 베트남도 취재하고 싶고 APEC도 취재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번 취재는 평양 티켓과는 무관하다는 억지도 부렸다.

브루나이 취재는 서울에 있는 본사기자들이 가는 것이 경비도 적고 수월할텐데도 막무가내였다.

결국 판은 깨지고 일부 특파원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1만달러짜리 예치금을 들고 신청마감시간에 맞춰 백악관으로 허겁지겁 달려가야 했다.

양봉진 워싱턴특파원 yangbong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