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준 한국디지탈라인 사장 사건을 계기로 벤처의 자금줄중 하나였던 사채시장이 급속 냉각되고 있다.

사채업자들 역시 벤처의 거품이 꺼지고 주가가 폭락하면서 더이상 "젖줄" 역할을 못하고 있다.

자칫 벤처와 사채시장이 공멸하는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벤처업체와 사채업자들의 관계는 사채업자들이 벤처에 접근하면서 본격화됐다.

작년 이후 벤처붐이 일고 주가가 급등하면서 사채업자들이 돈을 싸들고 벤처기업을 찾아왔고 이 과정에서 주식을 매개로 한 관계가 이뤄졌다.

일부 사채업자들은 현금뭉치를 보자기나 가방에 담아서 테헤란로에 있는 벤처기업의 문을 두드렸다.

코스닥 등록과 이에 따른 자본차익(capital gain)을 얻어보자는 뜻이었다.

현장에서 주식을 사기도 하고 나중에 사모때 먼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것임은 물론이다.

''잘만 잡으면 수백배 수익도 가능한'' 당시 상황에서는 사실 누구나 꿈꿀 수 있는 일이었다.

심지어 이들 사채업자 중에서는 과거 힘깨나 썼던 권력기관장의 돈이라며 증자때 우선적으로 배려해 달라고 압력을 넣기도 했다.

장롱속 쌈짓돈을 갖고 벤처기업 문을 두드리던 아줌마부대와 마찬가지로 사채업자들 역시 ''묻지마 투자''를 했던 것.

하지만 올 중반 이후 시작된 코스닥시장의 폭락과 함께 이들 사채업자는 된서리를 맞았다.

줄잡아 수조원에 이르는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이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된 것은 코스닥이나 상장가능성이 있는 미등록기업 주식에 투자한게 대부분인데 이들 주식의 가격이 그야말로 곤두박질쳤기 때문.

심지어 10분의 1로 떨어진 것도 수두룩하다.

아예 거래가 되지 않아 환금성이 없어진 ''휴지조각''이 된 장외주식도 많다.

''코스닥 투자가들이 3분의 1 토막이라면 장외주식 투자자들은 깡통''이라는 탄식이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주가가 폭락하면서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대표적인게 사채업자에 의한 경영간섭과 압력.

이들은 먼 훗날을 바라보며 기술개발에 노력해야할 벤처기업들에 당장의 실적을 요구한다.

장래를 고려하지 않고 눈앞의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익명의 한 벤처경영자는 "사채업자들은 당장의 장외가격만을 따지기 때문에 내실없는 계획과 실적을 억지로 만들어 발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연히 벤처기업의 속은 멍드는데 겉보기만 그럴 듯하게 꾸미는 일마저 생기고 있다는 것.

심지어 엉뚱한 인사를 이사로 선임하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장외주식을 대규모로 유통시켜 회사의 이미지를 흐리기도 한다.

"등록전에 대규모 주식 물량이 시중에 풀려나와 만신창이가 된 종목들이 적지 않다"고 벤처캐피털 업계의 한 전문가는 지적했다.

기업 입장에서 사채시장은 필요악이다.

지하경제의 대명사인 사채시장은 역기능이 많지만 때로는 급전을 구하는 순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제는 양바퀴 모두가 부서져 한걸음을 나아가기도 힘든 상황을 맞고 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