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이 여인의 애절한 음률의 가사가 백인홍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북에 계신 부모와 헤어져 외로움에 떨던 내가/당신을 만난 후부터 외로움을 잊었네/당신은 나의 사랑,당신은 나의 보금자리/당신의 품속에서 나는 다시 태어났네/사랑받는 여인으로,사랑하는 여인으로''

이 여인 역의 배우가 노래를 끝내자 젊은 박정희가 다정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나 그대를 만나 사랑에 눈떴네/사랑은 눈을 멀게 한다 했는데/나 그대를 만나 삶이 무엇인 줄 알게 되었네/나 이젠 긴긴 밤 외로움을 떨쳐버렸네//나 그대를 만난 후부터 생에 애착을 가졌네/사상이 무엇이냐? 민족이 무엇이냐?/그대의 황홀한 신음소리만이 들려오네''

박정희와 이 여인 두 사람의 노래가 끝나자 무대가 캄캄해지면서 불안한 음향이 퍼지고 곧이어 천둥소리가 울리고 번개가 친다.

두 사람은 두려움에 떨며 서로 감싸안고 바깥쪽을 본다.

잠시 후 계급장을 달지 않은 군복의 방첩대원인 듯한 두 남자가 나타난다.

그들이 박정희의 양쪽 팔을 잡고 끌어내려 하자 이 여인이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친다.

결국 박정희는 두 방첩대원에게 끌려 무대 밖으로 나가고 얼빠진 이 여인만 혼자 남는다.

무대 한쪽에서 내레이터로서 여가수 역을 맡은 김명희가 나와 말한다.

''광복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한반도는 좌·우 사상의 갈등으로 흔들렸다.

1948년 박정희는 방첩단의 신문실로 끌려갔다.

그가 군 내부의 공산주의자로 지목되었기 때문이다''

김명희의 내레이션이 끝나면서 이 여인이 위를 올려다보며 악을 쓰듯 소리친다.

''그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야,공산주의자일 수가 없어/그가 공산주의자라면 어떻게 나를 사랑할 수 있단 말이야?/공산주의가 싫어서 가족을 두고 혼자가 된 나를 말이야/그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야,그는 낭만주의자야/공산주의와 낭만주의를 구별 못하는 바보놈들!''

여인이 울부짖은 후 그 자리에 엎드려 운다.

여가수 역의 김명희가 무대로 나와 이 여인을 맴돌며 가벼운 율동과 함께 노래한다.

''주의,주의,주의…/자본주의,공산주의,낭만주의,이상주의/모두가 똑같은 아무 쓸모 없는 것/공산주의는 사람을 지루하게 하고/자본주의는 사람을 외롭게 하는 것/낭만주의는 사람을 쓸쓸하게 하고/이상주의는 사람을 오만하게 하는 것/남자에게 주의란 사랑 대신으로 찾는 것''

김명희가 1절을 끝낸 후 율동과 함께 다시 2절을 계속 노래한다.

''주의,주의,주의…/자본주의,공산주의,낭만주의,이상주의/낭만을 좇아,이상을 좇아/남자들이 찾아가는 곳은 공산주의/젊음의 공허함을 쫓아내기 위해/너도나도 주의를 찾다보면/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만 주게 되고/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을 가져올 뿐''

무대가 어두워지고 커튼이 내려왔다.

객석에서는 우레 같은 박수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박수소리는 김명희를 향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백인홍은 그녀가 불멸의 스타로 탄생하는 순간임을 직감했다.

그는 가슴이 벅차 자신도 모르게 힘껏 박수를 치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