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철저하고 신속한'' 구조조정을 통해 우리경제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서 정부는 연말까지 금융과 기업의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겠다고 소매를 걷어붙였다.

빚이 많은 부실기업은 퇴출시키고,금융기관에 대해서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실채권을 털어내 건실한 은행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정부가 제시한 기준에 따라 죽일 기업과 살릴 기업을 가리느라 애를 먹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금융기관이건 기업이건 철저한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데 이론이 있을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적인 제약이 너무나 많아 생각만큼 쉽게 이뤄질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와 주문이 지나치게 큰 것은 아닌지 함께 생각해 볼 일이다.

부실기업퇴출은 회사의 파산을 의미한다.

실직자가 늘고,소득이 줄어들 것이다.

이는 비단 해당기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여파가 거래기업 등으로 번져 나갈 것은 뻔하다.

그것도 몇개의 기업이 아니라 수십개,또는 수백여개가 넘는 기업들이 일시에 도산하는 비운을 맞는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님은 자세한 설명이 필요치 않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국내경기가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어 경제불안을 증폭시키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부실기업이 정리되면 그 여파로 또 다른 부실기업이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이는 내일을 위해 고통을 참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논리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같은 논리가 통하기 위해서는 고통분담에 대한 이해당사자들간의 합의가 전제돼야만 한다.

예컨대 일자리를 잃는 근로자들로서는 황당한 일이 아닐수 없다.

노동계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경제가 불안해지고 실업자가 늘어나면 정부나 정치권도 편할리 없다.

특히 여당의 입장에서는 심기가 불편해지기 십상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을 분명히 해두지 않으면 구조조정 또는 부실기업 퇴출작업은 실패작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정부는 어느 정도의 실업과 경기충격을 감내할수 있는가에 대한 한계를 분명히 설정해 두어야 한다.

그에 대한 불가피성을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득시켜야 한다.

또 여당이건 야당이건 정치권은 그같은 불가피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지원해주는 결단을 내려줘야 한다.

결과만을 놓고 대안없는 비판으로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게 되면 정부 정책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근로자 또는 국민들도 어느정도 고통분담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같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은 것같아 걱정스럽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부실기업 정리의 방법론이 과연 적절했는가에 대해서도 반성의 여지가 없지 않다.

연말까지라는 시한을 설정한 것,부실판정기준을 제시한 것,그리고 조금은 떠들썩하게 추진하는 것 등에서 그런 의문이 남는다.

기업구조조정은 한번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산업구조가 변화하면서 지속적이고 꾸준히 이뤄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연말까지는 너무 짧은 기간이다.

기업을 벌주고,정부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떠들썩하게 추진할 일도 아니었다.

원론대로라면 부실기업퇴출은 채권자인 은행이 알아서 할 일이다.

부실판정의 기준은 동일한 기업이라 하더라도 은행마다 다를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해결해야 할 다급한 현안은 금융구조조정을 포함한 금융정상화 조치다.

경제의 체온을 느낄수 있는 주식시장은 싸늘하기만 하다.

주가는 이미 연초에 비해 반토막난 상태다.

성장 물가 국제수지 등 거시경제지표도 어느 것 하나 낙관할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의 불투명한 행보도 눈여겨 보아야 할 일이다.

금융기관들에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부실기업을 정리하고 나면 모든게 잘 풀릴 것으로 낙관해선 안된다.

경제실상에 대해 국민들을 좀더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그 바탕위에서 그야말로 종합적이고 정교한 정책대응이 어느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