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로 출세하려면 한국과의 협상에 참가하라"

미국 관가에는 이런 우스갯소리가 나돈다.

한국과 협상을 벌일 경우 때로는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성과를 얻어가기 때문이다.

한국의 취약한 협상력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대우차와 한보 철강의 잇따른 매각 불발도 "협상 전략과 대안 부재가 낳은 인재(人災)"라고 진단한다.

한국정부 및 채권기관의 "한건주의"와 "조급증"이 실패를 자초했다는 얘기다.

"한보철강 매각 무산은 한국정부의 부실자산 처분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파이낸셜 타임스의 최근 보도도 같은 맥락에서다.

JP 모건의 임석정 지점장은 "대우차 입찰 평가위가 협상 상대를 하나만 골라 스스로 대안을 없애 버렸다"며 협상의 ABC를 어긴 처사라고 지적했다.

포드가 구속력 없는(non-binding) 가격을 제시하고 정밀 실사를 통해 대우차 인수의 손익계산서를 따지고 있을 때 한국측은 선진업체의 ''신사도''만을 믿은 채 헐값 시비를 잠재웠다는 안도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국제변호사인 이광은 외대 무역학과 교수는 "매각 일정에 쫓겨 상대방의 계약이행 의지를 파악하는데 소홀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보철강 채권단 입장이 아무리 아쉬운 처지였다고 하더라도 계약 불이행시 손해배상 청구 조항조차 빠졌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국내기업의 해외매각을 몇차례 성사시킨 한 법률회사 변호사는 "포드의 입찰 희망가격에 만족한 나머지 정부 스스로 가격을 공개한 것은 국제 관행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추후 다른 업체들과의 협상 여지를 없애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그는 "포드의 인수 포기 소식에 대해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분개하기 전에 법적인 대응방안조차 마련해 놓지 않은 한국의 패착을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도 대우차 입찰 직전 정부와 채권단이 대우차 처리의 현실적인 대안은 해외매각 밖에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협상력 제고 차원에서 자제돼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성봉 KIEP 연구위원은 "매각 실패에 조건반사적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원칙을 세워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에서 처리과정을 배후 조정하기 보다는 채권단이 매각협상을 벌이고 책임까지 지는 시스템을 정립해야 한다는게 그의 견해다.

협상학 전문가인 이기수 고려대 법대 교수는 "시한을 못박는 것은 스스로 협상여지를 줄이는 꼴"이라며 "향후 협상에선 최선 이후 차선은 물론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예상해 신중하게 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광은 교수는 "제너럴 모터스(GM)가 대우차 매각에 단독 협상자로 나선 이상 가격과 인수사업 선정 등에서 일방적인 조건을 요구해 올 것"이라며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치밀한 전략과 협상 노하우가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책 결정자들은 협상 실무자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며 "위에서 결정하고 밑에선 지시를 수행하는 ''톱-다운 방식''으로 매각이 진행될 경우 포드쇼크가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명현 고려대 교수는 "아마추어가 프로와 마주앉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관료나 채권기관이 직접 협상테이블에 앉기 보다는 해외 전문 변호사 등 고수들을 내세워 협상에 임해야 한다는 얘기다.

조 교수는 "아무런 카드없이 GM에 일방적으로 끌려가기 보다는 능력있는 외국인 경영자에게 한시적으로 경영을 맡겨 대우차를 정상화시킨 뒤 내다파는 ''제3의 대안''도 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이 팔리지 않으면 ''리모델링''을 해서 이사철에 파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때마침 금융감독위원회는 10일 대우차와 한보철강 매각실패에 대한 문책조치를 단행했다.

전문가들은 문책같은 단발성 조치보다는 협상력을 보강할 수 있는 장기투자에 신경을 써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