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세 < 세계경제연구원 자문위원 >

정부는 제2차 금융구조조정을 위해 추가로 공적자금을 조성키로 했다.

늦었지만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본다.

64조원이 투입된 제1차 공적자금은 금융기관의 건전성 회복에 나름대로 역할을 했다.

그러나 1차 공적자금투입과 이에 병행한 금융구조조정은 두가지 점에서 오류를 범함으로써 2차 공적자금 투입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첫째 충분치 않은 공적자금을 투입,금융구조조정의 효과가 미진했고 따라서 제2차 공적자금을 투입케 했다는 점이다.

98년 1차 공적자금을 투입할 당시 금융기관의 부실규모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

정부의 공식발표는 부실채권이 모두 1백18조원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이후 각 금융기관의 잠재부실이 잇따라 드러나 정부의 부실규모 추정은 과소평가됐음이 판명됐다.

더구나 1차 구조조정이후에도 대우와 같은 대기업의 부실로 금융기관은 추가 부담을 떠안게 되어 ''설상가상''이 됐다.

예를 들면 공적자금이 투입된 한빛은행의 경우 99년도 영업이익은 2조원을 냈다.

그러나 대우 등 대기업의 부실로 인한 대손충당금을 3조9천억원이나 적립해야 함으로써 1조9천억원의 적자를 낼 수밖에 없었고,이로 인해 자력으로 금융정상화를 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둘째 정부가 구조조정이후의 경제를 낙관적으로 보고 공적자금 회수에 집착했다는 점이다.

공적자금은 어차피 국민부담을 전제로 한 구조조정비용이다.

투입된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노력은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해야 하는 정부로서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너무 지나쳐 당연히 지불돼야 하는 비용과 손실을 지불하지 않으려 할 경우 구조조정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제1차 공적자금투입때 공적자금은 퇴출금융기관의 예금 대지급과 부실채권의 인수,그리고 부실은행에 대한 출자로 사용됐다.

이중 예금 대지급분은 공적자금의 순손실분이지만 은행에 대한 출자분과 부실채권의 인수분은 경제가 호전되면 자본시장에서 처분,원금을 회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경제가 어느 정도 호전되고 주식시장이 활황이 돼도 금융주,특히 정부가 출자를 한 은행주는 올라가지 않아 정부가 인수한 액면가의 절반도 안되는 수준에서 헤매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투자자들이 금융구조조정이 미흡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정부가 공적자금을 주식시장에서 전액 회수하려는 의지 때문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의 주가가 액면가격이상으로 올라가면 정부가 대량으로 주식을 처분,주가를 떨어뜨릴 것을 뻔히 내다보고 있는 투자자들이 있는 한 시장은 반응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일이 실제로 지난 가을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한 은행들에서 발생했다.

당시 한빛은행은 한때 주가가 액면가격의 두배 이상 올랐었다.

그러나 정부가 갖고 있는 주식을 일부 처분하는 과정에서 주가는 액면가격이하로 떨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부와 투자자들은 시장에서''게임''을 하고 있다.

이 게임에서 정부는 액면가격이상 올라가면 처분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카드를 이미 다 보여 준 셈이다.

정부의 속셈은 ''구조조정에 들어가야 할 비용과 손실을 투자자들에게 전가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액면가격이하라도 처분,손실을 감수하려 한다면 투자자들은 부담을 느끼지 않고 인수하려 할 것이며,구조조정 효과가 나타날 때가 되면 시장에서 주가상승으로 반응을 보일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은행주가 올라가기를 막연히 기다리지만 말고,액면가격이하라도 과감하게 처분함으로써 구조조정의 시기를 단축하고 그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공적자금 투입때 이 점에 유의,충분한 공적자금 마련과 함께 시장 반응에 대해서도 면밀한 검토와 준비를 하여 지난번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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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약력=△서울대 경제학과 △미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박사 △산업연구원 부원장 △산업기술정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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