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연구단지가 "대덕밸리"로 선포됐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런 선포식을 가진걸 보면 이 지역이 "새로운 벤처집적지"로서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강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대덕단지는 아직도 진행형(on-going)이라는 사실이다.

그간 이곳에 투자된 돈은 4조5천억원에 달한다.

8백40만평의 단지에 20개 정부출연연,45개 기업연구소,9개 정부투자기관,4개 고등교육기관,8개 공공기관 등 86개 기관이 입주해 있다.

박사급 연구인력만 4천여명이 집결한 국내 최대 연구단지다.

이런 단지가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30년의 긴세월이 필요했다.

73년 당시 과기처는 새로운 연구단지가 필요하다고 인식,일본 쓰꾸바 연구학원도시 개념을 토대로 조성계획을 추진했다.

그후 정치 경제적 환경변화에 따라 우여곡절을 겪다가 92년 대역사가 일단 완공됐고,그로부터 다시 10년이 흐른 것이다.

그렇지만 불과 몇년전까지도 이곳은 물리적인 연구집적지일뿐,생산.판매.산업입지 등 산업화 기능의 정체성때문에 비판도 많았다.

심지어 실패작이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벤처붐을 계기로 그간 축적된 연구능력이 수요측면에서 새로운 유인을 만난 것이다.

벤처기업의 6.5%(4백50여개),벤처기업 증가율 15%(전국 최고)가 현재 이곳의 벤처지표다.

이들은 정보 통신,환경 기계,생명 화학,원자력 반도체 분야에서 대부분 기술력을 갖췄다는 분석이다.

이런 변화의 바람이 불자 과기부 산자부 중기청 정통부 등 각 부처를 비롯 대전시의 기대와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

벤처자본 유인,마케팅 강화,벤처기업육성촉진지구 및 소프트웨어진흥구역 지정,산업입지 확보 등 각종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이곳의 "기회요인"과 "위협요인"을 냉철히 살펴보는 것도 긴요하다는 생각이다.

지방자치제도 실시전에 정부가 전국을 대상으로 "대덕-연구집중지",창원-생산집중지"등 기능별 특화정책을 제시할 땐 그럴듯해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지역이라는 공간을 토대로 "연구-기술-생산-산업-부가가치"라는 내생적 체인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이것은 OECD가 강조하는 클러스터(cluster)개념이기도 하다.

지금 대덕단지는 국내 최초로 이런 집적지를 실험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기회요인을 맞고 있다.

또 이곳은 국내 최초로 선진국형 혁신과정을 보여주었다.

사실 우리는 "Reverse Engineering"처럼 "생산 -> 기술도입 -> 기술개발"의 역주기적 기술혁신이 지배적이었지만 이곳은 그 반대다.

구미와 달리 아시아적 개발모델로 조성되긴 했지만 긴세월이 흘러 맛보게 된 대덕단지의 이런 경험이 중장기적 비전의 중요성과 창의적 기술혁신에 대한 인식개선으로 이어지면 이 역시 기회요인이다.

그러나 이곳의 벤처붐에는 역설적이면서도 결코 무시못할 동인도 작용했다.

중앙에서의 소외감,열악한 연구환경,조변석개인 과기정책 등으로 그간 내재돼 있던 구성원들의 "탈대덕"과 "이직" 수요가 탈출구를 찾은 측면도 있다.

이곳의 연구 시스템이 안고 있는 본질적 문제가 자칫 벤처분위기에 가려질 경우 이는 연구능력의 공동화를 초래할 수 있는 위협요인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선 대덕단지의 비교우위성 유지도 중요 과제다.

집적지와 비교우위성은 서로 다른 얘기다.

지금 대덕이 주목받는 것은 다른 지역에 없는 기초적 연구자산이 있고,그것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리라는 인식때문이다.

모든 부처가 개입해 창업 실용화 산업입지를 부르짖어도 이곳에 단지를 조성했던 과기부만은 미래를 봐야 한다.

대덕의 비교우위성을 지켜나가기 위해선 벤처의 필수적 보완재인 기초연구가 자칫 경쟁재로 전락해 희생될 위험을 없애야 한다.

이런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접근한다면 "대덕밸리"라는 거창한 선포식이 없더라도 "누가 한국경제의 미래를 묻거든 대덕밸리를 보라"는 소리가 언젠간 나올 것이다.

안현실 전문위원 경영과학박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