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1백조원이 넘는 내년도 예산안이 편성됐다.

정부는 일반회계와 재정융자특별회계를 합친 내년도 예산안을 1백1조원으로 편성했는데,이 규모는 올 추경예산안에 비하면 6.3%의 증가이지만 올해 본예산에 비하면 9%가 늘어나는 셈이다.

현 정부 출범 후 작년까지 기획예산처는 경기침체로 인해 줄어든 세수를 갖고 경기부양,구조조정,실업자 및 빈곤층 대책 및 경쟁력 강화와 같은 여러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려운 살림살이를 했다.

그러나 올해 경기가 회복되면서 세수도 눈에 띄게 증가,세계잉여금이 생겨 기획예산처로서는 모처럼 여유가 있는 느낌이다.

내년도 예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최근 연속적으로 발생한 악재들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 이전의 낙관적인 경제전망에 근거하여 예산을 편성했다는 점이다.

예산안이 근거로 하는 내년 경상성장률(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성장률) 8∼9%는 유가폭등,반도체가격 하락 및 포드의 대우자동차 인수 포기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의 예측이다.

금융·기업 구조조정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연속적으로 발생한 악재들이 내년 성장률을 비롯 거시경제변수에 미칠 악영향은 불 보듯 뻔하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가정한 내년도 세수증가분 16조원도 달성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예산안은 성장잠재력 확충,사회복지예산과 환경개선을 위한 삶의 질 향상,교육투자 확충,농어촌 및 중소·벤처기업 지원,사회간접자본 투자,구조조정지원,남북교류확대,공무원 처우개선 및 심지어는 국방비 증액까지 무려 15개 부문에 걸쳐 대폭적인 예산을 증액하며 2003년까지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고 하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모순되는 시나리오가 가능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그에 상응한 불필요한 예산의 삭감이 수반돼야 하는데 그러한 삭감노력은 별로 보이질 않는다.

정부의 예산삭감 노력은 공공근로를 포함한 한시적 세출소요의 삭감과 특별회계의 운영 개선 및 사회간접자본 투자우선순위와 투자규모 조정을 통한 2조6천억원 삭감과 지방교부금의 대폭 증액에 따른 국고보조 및 융자의 축소로 인한 1조4천억원 삭감을 합쳐 겨우 4조원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막상 내년도에 들어가면 현재 정부가 예상치 못했던 추가 예산소요가 분명히 어디선가 발생하리라는 것이다.

올해만 해도 의약분업과 같은 정책실패와 금융노조 파업 무마를 위해,그리고 총선을 전후해서 선심성 예산을 편성함으로써 막대한 추가예산이 들어갔던 것이다.

더욱이 이번에 발표된 추가 공적자금 40조원에 대한 금융비용 또한 이번 예산안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10월부터 도입될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또한 자칫 잘못하면 내년도 예산의 추가수요를 필요로 할지 모를,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다.

따라서 내년도 예산안은 현재 제시된 수준보다 좀더 낮게 편성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당초 예상보다 줄어들 세수감소를 고려해서뿐만 아니라 유가폭등을 비롯 내년에 발생할 인플레 압력을 고려하여 올해 본 예산 대비 6∼7% 증가율 이하로 편성돼야 한다.

이러한 예산편성은 정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각 부문의 예산증액분에 손대지 않고도 불요불급한 부문의 예산을 삭감하는 노력을 강화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지방교부금과 지방교육교부금의 증액에 따른 국고보조의 삭감,성과주의예산편성을 통한 금년도 실적저조 부처의 예산삭감,사회간접자본투자의 예산배정방법 개선,기금의 통폐합,공기업과 정부투자기업의 운영효율화 등이 그에 해당한다.

이 밖에도 다양한 삭감가능 부문이 있다는 것은 기획예산처가 그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마지막으로 돈을 요구하는 곳은 많고 돈 들어올 데는 많지 않은 상황에선,보수적으로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