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conomist 본사 독점전재 ]

한때 베일속에 가려진 지도자로 알려졌던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제 카메라에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고 유머와 위트있는 모습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 인민무력부장을 보내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간 군사회담이 열리게 하는가 하면 빠른 시일내에 서울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전례 없는 미소작전을 쓰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는 과거의 술수를 부리고 있다.

불행히도 한국과 미국 일본 등 주변 3국은 북한의 유화작전에 말려들 위험성에 처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러시아와의 합의를 통해 도출되었을 김 위원장의 술책은 미국 등이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지원할 경우 미사일 개발계획을 포기하고 이란 파키스탄 리비아 등에 대한 로케트 수출및 기술지원을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미사일 수출을 재개할 수도 있음을 숨기지 않고 있다.

미국의 외교전문가들은 북한과 김 위원장의 속셈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기에 여념이 없다.

결과적으로 북한이 미사일 개발계획 포기의 대가로 요구하고 있는 인공위성 발사 지원을 미국 등이 수용할 경우 북한의 비행(非行)을 부추기는 결과만 초래하게 될 것이다.

김 위원장이 요구하고 있는 ''뇌물(bribe)''의 성격을 살펴보기 전에 한·미·일 3국은 북한이 앞으로도 ''깡패''와 같은 행태를 계속할 경우 철도 교량 항만 공장 등 이미 논의되고 있는 대규모 투자와 원조를 계속할 것인지에 대해 자문해봐야 한다.

이는 쉽지 않은 문제다.

2년전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시험발사했을 때 한·미·일 3국은 북한에 대해 시험발사를 계속할 경우 피폐한 북한경제를 살릴 경제원조를 중단하겠다고 밝혔었다.

3국의 강력한 압박은 결국 김 위원장으로 하여금 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하고 대화에 나서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지난 6월의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 위원장은 갑자기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 북한과 새로운 투자계획 등을 논의할 때 미사일 문제를 제기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으나 한국은 새롭게 해빙무드를 타고 있는 경제·정치적 관계에 찬물을 끼얹을까봐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일본도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등에는 많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지만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상실을 원치 않고 있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만약 북한의 미사일 개발계획이 미국에 그같이 거슬리는 것이라면 차라리 돈을 주고 몽땅 사버리는 것이 국가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는 것보다 저렴할 것이다.

북한이 비행을 무기로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적 보상을 얻어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거 호전적 이미지의 김 위원장과 오늘날 국제사회를 향해 미소를 흘리고 있는 김정일은 여전히 동일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미사일 개발계획을 포기하겠다는 그의 발언을 1백% 신뢰한다 치더라도 기존의 미사일 판매로 인한 손실은 상쇄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김 위원장의 무기고에는 아직도 흥정할 것들이 많이 있다.

미사일 다음에는 생화학 무기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는 미사일 문제로 한국과 미국 일본 등 3국 관계를 이간질할 능력도 충분히 갖고 있다.

물론 한반도에서의 진정하고 지속적인 평화정착은 중요한 것이다.

지난 50년간의 과거를 되돌이켜 보면 평화정착이 얼마나 많은 인내와 용기를 요구하는 일인지 잘 알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계속되는 강짜에 굴복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은 아니다.

정리=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

<영국 이코노미스트 9월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