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형 < 서울대 교수 / 공법학 >


지난번 비전향 장기수 송환을 계기로 북한에 살고 있는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가 대두됐을 때,야당은 이를 비전향 장기수 북송 문제와 연계시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말하자면 남북관계에 상호주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후에도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북한에 일방적으로 혜택을 주어선 안되고,경제지원을 하되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북한의 개혁·개방 조치를 받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상호주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호주의란 국제법관계에서 발전된 원칙이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국민을 상대국에서 보호해주면 우리나라도 그만큼 상대국 국민을 보호해 준다는 것이다.

일견 극히 자명한 호혜평등의 원칙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상호주의가 대립상태를 고착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문제다.

작금의 남북관계가 그러했다.

남북한이 ''네가 먼저 양보하지 않으면 나도 안한다''는 식의 독존적 상호주의를 고수했더라면 남북정상회담은 열릴 수 없었을 터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상호주의란 것이 언제나 모든 문제에 대해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원칙인지 의문이 생긴다.

그것은 정경분리식의 예외를 허용할수도 있다.

또 상대방의 상응하는 배려를 기대해 미리 배려한다는 일종의 변형된 상호주의를 취할 수도 있다.

더 중요한 점은 상호주의가 대립과 절연을 고착시키는 요인이 되는 건 거래가 일회적으로 끝나는 경우뿐이라는 것이다.

거래가 계속된다면 상호주의 때문에 먼저 움직이지 못하는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이번엔 내가 양보했지만 나중엔 상대방이 더 양보해줄 것을 기대,먼저 양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굳이 상호주의를 단 한번으로 끝나는 거래에만 적용하고자 했다면 그것은 아직 양보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 같은 소치일 뿐이다.

문제는 만일 우리가 먼저 양보한다면 그것을 고맙게 생각하는 마음에서 상대방이 나중에 더 양보할 수 있으리라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송이버섯을 보내준 데 감사의 뜻을 표한 김대중 대통령처럼 북한에서도 비전향 장기수를 송환해준 데 대해 진정 마음으로부터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이렇듯 상호주의를 전향적으로 이해할 때 비로소 정치의 가능성이 열린다.

비단 남북관계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경색과 고착으로 국민을 낙담시키고 있는 의정분규나 여야관계에도 이 전향적 상호주의가 적용돼야 한다.

특히 ''전제조건을 받지 않으면 절대로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든가 ''국회에 먼저 들어오지 않으면 어떤 논의도 불가하다''는 절대주의 적용범위를 한정할 필요가 있다.

정치를 한번하고 말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는 남북화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때 그때 필요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북측이 보내온 송이버섯만으로도 현기증을 느끼는데,우리가 앞으로 협상하고 상대해야 할 상대방은 어떤가.

혹 우리의 상태는 수비가 무너져버린 한국축구같은 것은 아닌가.

이쯤에서 이 총재에게 꼭 바라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남북관계만큼은 정치적 상호주의의 예외영역으로 설정하라는 것이다.

선거비용 실사 개입사건과 한빛은행 대출의혹의 규명문제를 계기로 빚어진 여야 대치국면에서도 남북관계와 통일에 관한 부분은 정치현안에서 따로 떼어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야당총재로서 이 문제가 결코 유리한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좀더 대국적인 포석이 필요하다.

그 스스로 남북관계의 진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그같은 흐름이 시대적 대세로 자리잡도록 야당총재로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천명한 바 있지 않은가.

남북관계에 관한 한 정책과정에 적극 참여,김 대통령과 머리를 맞대고 정책을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와 여당,아니 김 대통령이 먼저 그런 기회를 마련해 적극 권유하면 어떨까.

이 총재는 ''대쪽법관''이란 이미지를 ''아름다운 원칙''이란 멋진 표어로 구현해낸 장본인이었다.

편협하고 소극적인 상호주의가 아니라,포용력있고 전향적인 상호주의를 통해 그 멋진 원칙의 아름다움이 빛을 발할수 있기를 바란다.

joonh@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