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산업의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또 12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투입한다고 한다.

미국 등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도덕적해이 방지를 염두에 두지 않은,그리고 자본 시장의 메커니즘을 통하지 않은 공적자금의 무분별한 투입은 거의 예외없이 실패로 끝났다.

자금 투입방식과 관련,국민 혈세의 직접적 지출을 억제하면서 은행 경영의 도덕적해이를 시장규율을 통해 방지할 수 있는 자기자본 확충 방안을 마련해야 할 시점에 와있다.

이를 위해 자기자본으로 간주되는 ''티어1(Tier1) 자본증권''발행을 정책대안으로 고려할 때라고 생각한다.

티어1 자본증권은 후순위채보다도 채무 변제 순위가 더 하위다.

또 영구채 성격이며 특정한 상황하에선 은행측에서 이자지급의 면제를 요구할 수 있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정부는 투자자들에게 원리금 지급을 보장하되 발행이자율을 대폭 낮출 수 있다.

주가가 액면가를 훨씬 밑돌아 증자가 불가능하고 또 후순위채권의 추가발행 여력이 없는 현 상황에서는 그간 선진국들이 은행의 자본확충 방법으로 활용했던 이 방식이 적절하다.

은행들이 고이자율을 감내하면서 자본을 확충하기 어려운 현실임을 감안할 때 시장메커니즘을 통한 티어1 자본증권 발행을 정부도 진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한다.

게다가 특정한 기간이 지나 은행이 우량은행으로 거듭날 경우,정부 지급보증이 자동 소멸되기 때문에 정부도 지속적인 부담을 질 필요가 없다.

티어1 자본증권 발행에 의한 자본확충 방안은 정부의 직접 공적자금 투여와 비교해 볼 때 다음과 같은 이점들이 있다.

첫째 정부의 지급보증은 우발적 채무의 성격만 갖기 때문에 우선 국민의 조세부담으로 이어지는 예산의 지출이 없다는 것이다.

또 해당 은행 신용등급이 투자자들과 약속한 소기의 수준에 도달했을 경우에는 정부의 지급보증 의무도 자동 소멸되는 조건을 증권발행 때 명시할 수 있다.

따라서 공적자금의 지출을 억제하기 때문에 납세부담을 안고 있는 국민에게 설득력있는 대안이 될 것이다.

둘째 부실은행 경영진의 도덕적해이를 시장규율을 통해 방지할 수 있는 이른바 시장논리를 도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해당은행의 책임하에 시장메커니즘을 통해 발행되기 때문에 국내외 투자자들로 하여금 해당은행 경영의 정상화를 지속적으로 다그치게 함으로써 투명성 제고 및 수익성 극대화를 도모하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로부터 지급보증의 부담을 안고 증권을 발행한 은행들로선 정해진 유예기간에 신용등급을 목표등급까지 높이려고 경영정상화를 통한 자구노력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만에 하나 정부의 지급보증이 실제로 국민에게 조세부담을 주는 원리금 대신 지출로 이어질 경우에는 정부로부터 해당경영진의 문책은 물론 은행 정상화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추가 제재가 자명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정부의 보증하에 증권이 발행되기 때문에 자금시장이 요구하는 이자율이 독자적인 발행의 경우보다 현격하게 낮아져 해당은행들이 현실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저리의 이자범위 내에서 시장을 통한 자기자본 확충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89년 뉴질랜드와 90년대 초의 스웨덴 핀란드 및 노르웨이에서 이 방식을 활용해 은행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다.

끝으로 은행구조조정의 속도 문제다.

97년 말 야기된 환란의 극복 과정에서 해외 투자자들은 우리의 ''개혁방법''보다는 ''신속성''을 높게 평가했다.

부실은행의 경영정상화가 늦어져 시중의 자금 유동성이 마비,많은 기업이 도산위기에 처해 있다.

이는 은행권 내의 부실채권 증가를 낳고,은행권 구조개혁의 발목을 잡아 궁극적으로는 세금 부담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거의 10년이 지나도록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일본의 경우가 그 좋은 예다.

그같은 전철을 답습하는 상황만은 피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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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약력=△조지워싱턴대학·뉴욕대학 MBA △살로먼 브러더스 기업금융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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