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그룹 부실감사 파장으로 국내 회계사업계에 지각변동의 회오리가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해외 제휴선과의 관계뿐 아니라 국내 회계사업계의 세력판도도 일대 전환기를 맞고 있다.

업계에서는 대우 부실감사 사건을 계기로 해외 제휴선의 입김이 한층 강해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국내 공인회계사들의 회계감사 신인도가 크게 떨어진 데다 일반투자자들과 채권단들이 회계법인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준비중이기 때문이다.

부실감사에 따른 피해보상 판결이 내려질 경우 국내 회계법인의 해외 제휴선도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미국 회계법인들이 국내 회계법인을 통합경영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물론 지금까지도 국내 대형회계법인들은 제휴선이 제시한 감사기준을 준수하는 조건으로 일정한 수수료를 내고 제휴선의 이름(브랜드)으로 감사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사실상 해외 제휴선의 현지 자회사에 가까웠다.

S회계법인 관계자는 "일부 국내 회계법인의 경우 이미 경영권이 미국 회계법인에 넘어간 상태고 다른 국내 빅5 회계법인들도 유사한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 회계법인의 경우 해외 제휴선으로부터 법인명을 바꾸라는 압력까지 받고 있다.

삼일회계법인의 한 관계자는 "해외제휴선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로부터 ''삼일''이라는 이름대신 ''한국PwC''로 간판을 바꿀 것을 요구받았다"고 털어놨다.

국내 회계법인들이 해외 제휴선에 내는 보험료가 큰 폭으로 인상되는 등 금전적 부담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도 높다.

대우사태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부실감사에 대한 피해보상소송이 봇물을 이룰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국내 회계법인들이 부담해야할 보험료가 인상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A회계법인 관계자는 "삼일 안진 안건 산동 영화 등 국내 빅5가 해외 제휴선에 내는 보험료는 현재(10억원 안팎)보다 2∼3배 가량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게다가 공인회계사회 업계가 갹출해 조성하고 있는 공동기금 부담도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손해배상소송 등에 대비해 적립해온 공동기금 1백60억원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부실감사 파문은 그러나 국내 회계사업계에 새바람을 불어넣는 계기로도 작용하고 있다.

특히 대형 회계법인에서는 세대교체가 급류를 타고 있다.

안건회계법인은 작년 8월 대표이사직을 40대인 김학수(48)씨에게 넘겨주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15년동안 대표이사를 지냈던 안진회계법인의 차재능(56) 부회장도 얼마전 대표이사 자리를 양승우(51) 회계사에게 넘겨줬다.

국내 최대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의 서태식(62) 회장과 영화회계법인의 문성일(61) 대표도 조만간 대표이사 자리를 내놓고 후선으로 물러날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공인회계사회 관계자는 "대우 부실감사로 인해 최악의 사태를 맞고 있는 국내 대형회계법인들로서는 제2의 도약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해외 제휴선들의 요구에 따른 세대교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대우를 비롯 IMF이후 표면화된 각종 부실감사에 대한 문책성 인사조치라는 설명이다.

이번 대우사태는 삼일회계법인의 독주체제를 한층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는 최근 미국 빅5가 국내기업 감사보고서에 자신들의 브랜드 사용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해외 제휴선의 브랜드를 쓰지 못할 경우 감사신뢰도가 높은 회계법인으로 고객이 몰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계기로 미국 빅5 등 해외 제휴선의 경영간섭을 견제하기 위해 국내 대형회계법인들이 덩치불리기에 주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빅5의 자회사로 전락할 경우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국내 대형회계법인들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여서 쉽게 빅5와의 제휴관계를 청산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미국 빅5라는 브랜드가 없으면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하려는 국내기업의 회계감사도 할 수 없는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