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민 < 본사 논설위원 >

"아프지 말아야지"

요즈음 자주 만나는 사람들끼리 흔히 나누는 인사다.

다치고 병드는 일을 좋아할 사람은 없겠지만 특히 병이 나도 치료조차 받기 힘든 최근의 의료사태에 대한 불만과 체념의 표현임이 분명하다.

벌써 몇달째 이어지고 있는 의료공백사태에 대해 ''환자의 신음소리를 외면해선 안된다''는 호소도 전혀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일각에서 정부와 의료계의 물밑접촉이 진전을 보여 타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지만 이제는 정말 의료소비자인 국민들의 인내도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정책당국은 물론 모든 의료인들이 함께 인식해야 할 때라고 본다.

매사가 그렇듯 일이 한번 잘못 꼬이면 그 결과는 당초 의도와는 달리 엉뚱한 사태로 발전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냉정을 되찾고 초심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재검토해보는 것이 상책이다.

의약분업을 왜 실시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아직도 의외로 많다.

의약품의 오남용을 줄이고,양질의 의약서비스를 제공하는 선진적 의료제도라는 정부의 설명은 수없이 많았지만 당장의 불편을 감내해도 좋겠다는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내기에는 불충분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같은 의구심을 해소하는 정지작업이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

그런가 하면 의약분업은 바람직하지만 완벽한 준비없이 시행하는 것이 문제였다는 지적도 적지않다.

의료계가 진료거부에 나선 표면적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의 사전준비가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완벽한 준비의 범주에 의사와 약사간 완전한 합의까지를 포함했다면 평가는 달라야 한다.

요즈음 매일같이 대두되고 있는 의권(醫權)과 약권(藥權)을 어떤 식으로 명확히 구분할 것인가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절차상으로는 지난 99년 2월 의사회와 약사회가 의약분업안에 합의하고 서명까지 했었다.

그런데도 지금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만 보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지난 63년 약사법 전면개정에서 의약분업을 명기하고도 지금까지 시행할 수 없었던 근본이유이자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의료대란의 핵심과제다.

따라서 지금의 의료공백 사태를 손쉽게 해소하자면 의약분업을 없었던 일로 취소하는 30여년전의 실패를 되풀이 하는 길밖에 없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해법인가는 신중히 생각해 볼 문제다.

그렇다면 현실적 해결방안은 없는가.

의료계는 지난달 31일 발표한 대정부 요구안에서 의업과 의도를 훼손하는 수많은 문제점들을 시정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크게 보면 두가지가 핵심이다.

하나는 의사와 약사간의 업역에 관한 것이고,다른 하나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다.

진료비 문제부터 생각해 보자.의약분업으로 의료인들의 수입이 줄어든다는 것은 정부를 포함해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일이다.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보험수가 책정도 같은 맥락에서 문제가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선뜻 시정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의료계의 요구를 충분히 수용하자면 엄청난 재정의 추가부담은 물론 소비자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궁여지책이긴 하지만 진료비와 의료수가의 단계적인 인상안을 제시했고,모든 문제를 의료발전특별위원회를 만들어 해결해 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힌바 있다.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도 의료계는 이를 일거에 시정하기를 원하고 있어 지나친게 아니냐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그같은 의료계 주장의 배경에는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이 작용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다.

그러나 의료계 역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구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속는셈 치고 믿어주면서 의료정책의 추이를 지켜보는게 마땅하다.

의사와 약사간의 업역문제는 서로의 주장에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타협을 통해 적절히 조정하는 길밖에 없다.

지금과 같이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투쟁하는 것은 극단적 이기주의에 불과하다.

진료복귀 후 냉정한 자세로 현실적 대안을 모색할 때가 됐다. 마음대로 아프지 않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