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원용 <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 wykwon@sdi.re.kr >

자주 쓰는 우리말 가운데도 그 뜻을 영어로 정확하게 옮기기에 까다로운 단어가 있게 마련이다.

이런 단어일수록 우리 토착문화가 흥건하게 배어있다.

그중 하나는 ''눈치''가 아닌가 한다.

국어사전을 펼쳐보니 ''남의 마음이나 일의 낌새(기미)를 알아 챌 수 있는 힘''이라고 한다.

눈치는 아무래도 강자와 약자 사이에 일어나는 비민주적이고 비공식적인 한국형 ''커뮤니케이션''수단인 것 같다.

어른과 아이,시어머니와 며느리,상사와 부하와 같은 수직적인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까닭이다.

자신의 소신도 없이 가급적 윗사람의 눈밖에 나지 않게 눈치껏 행동하는 것이 양자의 지배구조를 깨뜨리지 않는 미덕인 셈이다.

해서 언뜻 보면 눈치란 용기없는 약자의 생존 ''노하우''이기도 하다.

권력을 거머쥔 윗분의 심중을 잘 받들어 살피고 알아서 기는 눈치꾼이야말로 열린 민주화 사회의 공적(公敵)이다.

이와는 달리 요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주민저항이 드세지자 반드시 필요한 쓰레기 소각장 등 도시내 혐오시설의 입지와 가동을 놓고 눈치보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나 정작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눈치를 잘 살펴 의정활동을 제대로 해준다면 여북 좋을까 하는 바람도 있다.

우리 모두의 유전자 깊숙이 각인된 ''체면 존중문화''는 눈치보다 ''염치''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눈치없는 사람이 염치없는 사람과 겹치는 불상사도 있지만,염치는 대체로 결백 정직 수치심을 연상시키는 함의를 지닌다.

1천만 인구의 세계적 거대도시 서울은 불행히도 인간미 넘치고 정감있는 모듬살이터라기보다는 이윤추구의 각축장처럼 보인다.

길거리에서도 몰염치와 파렴치를 목격하는 일은 항다반사다.

운전자의 양보심 결여,이기적인 불법주차,줄서기 등 공중질서의 실종,유원지 쓰레기 투기,거리에 침뱉고 담배꽁초 버리기,가짜식품 판매 등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일본도시와 견주어 볼 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거나 수분(守分)할 줄 모르는 천민자본주의적 무한경쟁속에 뻔뻔스러운 얌체족이 오히려 활개를 친다.

우리는 원래 염치없는 사람을 가장 경멸하고 손가락질하던 민족이었다.

지난 20세기 근대화 과정에서 돈만 밝히는 ''동방무례지국''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라도 ''살맛''이 나는 바른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염치가 수평적 공동체규범으로 제자리를 잡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

21세기 민주시민사회의 도래를 진정코 바라건대,우리 모두가 눈치를 버리고 염치를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