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일의 슈퍼파워를 가진 미국 정치계에 제3의 물결이 일고있다.

전통적으로 백인 남성 이미지를 다져온 공화당은 최근 전당대회에서 ''온정적 보수주의''를 내걸어 흑인,중남미및 아시아계, 그리고 여성들에 대한 포용을 강조했다.

골수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개혁당의 대통령후보 팻 뷰캐넌은 복수문화주의에 대한 평소의 신랄한 비판을 접고 흑인 여성을 러닝 메이트로 지목했다.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는 미국 정치 역사상 최초로 유태인을 부통령후보로 선정했다.

쉽게 말해 현재 미국 정치무대에는 과거의 다수가 퇴장하면서 소수들이 입장했다.

이러한 ''포섭 또는 다양화''는 부분적으로는 겉치레로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신경제''로 옮겨가는 국가들에 미래 정치가 나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다시말해 정가에 불고 있는 이같은 변화는 산업혁명의 결과인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대중 교육,매스미디어 등으로 대표되는 대중 정치의 틀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미국 신경제의 기류는 유니폼을 벗어던지고 모든 면에서 다양화를 보장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대량생산 대신 개인 위주로 수준높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신경제 기업이 늘어나는 것은 생산의 탈대중화를 추구하는 제3의 물결이다.

대중시장은 틈새시장,또는 1인시장으로 쪼개진다.

주요 공중파 방송국의 프라임타임(시청률이 높은 저녁7∼10시)시청률은 최근 50%까지 감소했지만 다양한 채널을 제공하는 케이블과 위성TV 시청자는 몇배나 늘었다.

특히 인터넷은 탈(脫)매스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하는 결정적 원인이다.

인터넷에 접속하는 6천만 미국 가구는 개인의 구미에 맞춰 정치적 관심사를 좁혀 나간다.

지식경제를 향한 제3의 물결의 파고가 높아지면서 경제 종교 문화 성적 가치관에까지 다양화 바람이 일고 있다.

동시에 소수 그룹화가 진행된다.

이들은 곧 사라졌다 새로운 이슈가 나타나면 다른 모습으로 다시 생겨난다.

이들은 짧은 시간안에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놀라운 응집력을 발휘한다.

미래 정치에서 다양성과 소수의 힘을 무시하는 정당은 퇴보할 것이다.

반면 풍부한 관점을 조율할 줄 아는 유연하게 조직된 정당과 소수에게 실제 의석을 안배하는 정당은 번창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계는 최근에서야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들이 다양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앞으로 정치계는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생성과 소멸의 주기가 짧은 소그룹을 포용하기 위해 정치권도 끊임없이 물갈이를 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 인터넷을 통해 고도로 정치화된 시민단체들과 어떻게 역할 조율을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사회 종교 정치계의 다양화는 특정 이슈를 두고 다수가 모이는 것을 점점 어렵게 만들고 있다.

양당제에서 모든 사람이 투표에 참석할 경우 한 정당은 적어도 51%의 지지율을 모을 수 있지만 이는 유권자들의 진정한 취향이 반영되지 않은 피상적 다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다수결의 원칙은 제3의 물결 속에서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가난한 소수는 다수 중산층에 의해 무시되고 종종 희생된다.

다수결의 법칙은 사회에서 정의를 구현하지 않는다.

따라서 대중 민주주의는 언젠가 파경을 맞게될 것이다.

산업혁명이 가져온 대중사회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대중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한가지 대안일 뿐이며 그 소멸이 민주주의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정치계는 이제 다양성을 인정하는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

정리=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