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어,저 사람들도 우네…" 눈물이 글썽해 TV를 보던 나는 한 순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북한 사회에는 아버님은 안계시고 ''아바이 동무''만 있는 줄 알았는데 북에서 온 할아버지 할머니는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와 똑같은 몸부림으로 똑같은 설움,똑같은 눈물,똑같은 감격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른 이념,민족 상잔,증오와 반목의 50년이었지만 인간가족의 가치,그 애틋함,사람다움의 모습은 남북이 다른 것이 없었다.

체제가 다르다지만 인간의 본원(本源)을 바꾸기에는 기나긴 시간도 무력해 보였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사회주의 국가,특히 북한의 모든 것을 평가하는 고정된 척도를 하나 가지고 있다.

우리와 같거나 비슷한 것은 ''좋은 것''이고,우리와 다른 것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다.

아마 북한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런 인식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북한의 노래,북한의 춤사위가 우리 정서에 맞지 않아도 그런 노래,그런 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남북 문화교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체제의 공존을 인정하면서 문화의 공존을 부인하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일은 없다.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의 공연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세 가지였다.

"측은했다" "가슴이 뭉클했다" "신기하더라"는 것이다.

사람마다 느끼기 나름이지만 무대 뒤에서 본 북한 예술단 소년 소녀들의 숨은 모습은 적어도 측은한 것은 아니었다.

그 아이들은 잠시의 쉬는 시간도 놓치지 않고 똑같은 동작,똑같은 노래를 끝도 없이 반복하며 연습,연습을 계속하고 있었다.

자신이 보여주는 예술에 대한 자세가 그렇게 진지하고 엄격할 수가 없었다.

연습이 끝나자 그 아이를 꼭 끌어안고 이마의 땀을 훔쳐주는 여자''지도선생''의 모습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들이 보여주는 예술의 행태는 최고의 정련(精鍊)과 무서운 절제와 최선의 노력이 빚어내는 극상의 것이었다.

북한 사람들이라고 차이코프스키만 고집하지 않는다.

그들도 드보르자크나 모차르트 베토벤을 즐겨 연주한다.

그 공연을 감상하는 청중들은 기립박수를 칠 줄 안다.

며칠 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는 북한의 ''조선국립교향악단''멤버들은 악보를 접어두고 무대에 나온다.

암보(暗譜)로 연주하는 것이다.

만의 하나 그것을 두고 무슨 장기자랑쯤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있다면 바로 그런 인식이야말로 바꾸어야 한다.

수천,수만개의 악보에 기록된 소리를 외울 정도면 얼마나 많은 시간의 연습과 몰입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인식의 변화는 북한에도 있어야 한다.

공연일정을 불과 며칠 앞두고 밑도 끝도 없이 공연을 불쑥 취소하거나 날짜를 바꾸는 일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문화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적어도 우리 사회엔 아무 때나 연주를 할 수 있는 비어있는 공연장은 없다.

돈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출연료의 문제는 시장원리를 존중해야 한다.

자선공연이 아니라면 사업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공연하는 사람이나 그 공연을 꾸민 쪽이나 모두 어떤 이익이 있어야 한다.

국제감각,국제적 관행은 문화의 세계에서도 불문의 룰이다.

북한도 이제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도를 따를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북한 공연단을 맞으며 새삼 문화의 단절을 느꼈다.

용어가 다른 것에 절벽을 느껴야 했다.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을 맞아 북측과 우리쪽의 무대 스태프들은 상당시간 서로 다른 무대용어를 해석하는 문제로 회의를 가져야 했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일의 신속한 진행을 위해 우리 쪽에서 먼저 그쪽 용어를 터득해 사용하기로 했다.

움직이는 무대를 ''왜건''이라고 하지 않고 그쪽 용어대로 대차(臺車),헤드 커튼을 ''눈썹막''이라고 불러 주었다.

그러나 남북문화교류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이런 하찮은 장애부터 하루 빨리 극복해야 한다.

''문화''란 단순히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으며,습관적으로 역사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와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지금 그 첫발을 내딛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