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황당하고 황망한 것들이 많다.

마주잡을 수 없는 사랑,피할 수 없는 악연,그리고 마음놓을 수 없는 자연…. 대학에 다니던 80년대 초반,나는 친구들과 함께 처음으로 무주 구천동 계곡을 찾았었다.

거기서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곳도 있구나, 감탄했었다.

눈에 아름다운 것은 몸에도 좋은 것이었다.

우리는 계곡물을 떠서 밥을 지었다.

밥맛은 물맛이구나. 우리는 그 때 처음으로 물이 다 같은 물이 아니라는 걸 배웠다.

바위 따라 계곡 따라,깨지고 합쳐지면서 생생하게 살아서 노는 물은 수도관을 타고 흐르는 답답한 수돗물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때부터 나는 물이 흐르는 산을 좋아하게 됐다.

재작년인가,그 때 그 계곡을 기대하면서 무주 구천동을 찾아갔다.

내 첫사랑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계곡 물을 손으로 떠먹으려 하는데 함께 간 친구가 먹지 말라고 충고한다.

왜? 모르니? 저 위에 골프장 생겼잖아.

골프장 잔디를 키우기 위해 다른 풀을 제거하는 맹독성 농약,이 계곡에 바로 그 물이 섞여 흐른다는 거였다.

흔했던 피라미 송사리들도 찾기 힘들었다.

도대체 누가 저 곳에 골프장을 허가해 줬냐고 씩씩거리면서 돈만 아는 인간의 이기심이 자연에 독을 탄다고 분노했다.

그렇게 정겹게 보이던 계곡이 공허했다.

눈에만 아름다운 건 사기(邪氣)이므로.배려를 모르는 손길로 자연을 사육하려는 인간 때문에 자연은 암같은 불치병에 걸리게 되고,결국 인간은 자연을 잃어버릴 거라고 했던 한 인디언의 말이 떠오른다.

지리산의 두 계곡을 막아 댐을 만든단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우리는 왜 자연과 공명하지 못하는가,아득해지기만 했다.

지리산 댐이라니…. 얼마나 풍성한 산인가 지리산이.

내 느낌으로 지리산은 일기예보가 힘든 산이다.

지형 때문인지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가 바뀐다.

구름이 꼈다 싶으면 빗발이 굵어지고 비가 한참 오겠다 싶으면 햇볕이 쨍쨍해진다.

하루만 꼬박 걸어보면 그 오묘한 변화를 눈치채고 ''산신령의 조화''라는 말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니란 걸 몸으로 느끼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변화가 많으면서도 변덕스럽다고 느껴지지 않는 게 지리산의 매력이다.

오히려 어머니 품처럼 편안하다.

설악산이 잘생긴 남자처럼 매혹적이라면 지리산은 소도처럼 영험해 보인다.

계곡이 보이지않는 곳에서도 물소리가 길을 안내하고,오르면 오를수록 진짜 하늘과 가까워짐을 느낄수 있는 산,그래서 기도하는 심정을 일깨우는 산.

나는 생각한다.

악인이라도 이 산으로 숨으면 절대 잡지 못할 거라고.아니,이 산에 있는 한 잡아서는 안될 거라고.어머니처럼 품어주는 그 기운 때문에 악도 악으로 남아있지 못할 것이므로.그 느낌들이 모여 이 산을 영산이라고 불렀던 게 아닐까.

게다가 크기는 또 얼마나 큰가.

걸어도 걸어도 산인 산,경남과 전남, 그리고 전북에 걸쳐 있는 이 산은 백두산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이 장장 1천4백km의 능선을 달려 맺음하는 한반도의 허파다.

우리나라 생물종의 30%가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 지리산이 댐건설로 무너져 내린다면 나는 정말 문명이라는 이름의 야만이 무서울 것 같다.

그런 지리산에 왜 댐을 건설하는가? 경남·부산지역의 물부족 때문이란다.

아,산좋고 물좋다는 한반도 우리 땅이 물을 걱정해야 하는 땅이 되는데는 30년도 걸리지 않았구나.

물이 부족하면 곳곳에 댐을 만드는 것,쉬운 선택이지만 옳은 선택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20∼30년이 지나면 우리는 어디서 무엇에 기대 호흡하며 살 것인가?

이제 환경은 단순한 객이 아니라 우리와 공생관계에 있는 살아있는 주체다.

당장은 번거롭더라도 댐건설에 앞서 검토해야 할 것들이 있다.

아깝게도 32%까지 새는 낡은 수도관,중수도 설치 문제,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행정.이런 것은 놔두고 그저 댐을 만들겠다는 것,그 쉬운 행정은 21세기 최고의 화두라 할 수 있는 환경을 무시하는 발상이다.

어쨌든 이제 우리 모두는 물을 아껴야 한다.

가까운 미래에 자연재해가 일어날 거라고 경고했던 인디언의 말을 무시하는 한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냇물은 흐르고 싶고, 산은 자연스레 그 물길을 내고 싶다.

A1405@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