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압구정동 일대는 첨단유행의 거리다.

80년대중반 갤러리아백화점 건너편에 고급의류매장 중심의 로데오거리가 형성된 뒤 소비와 관련된 국내의 온갖 바람과 신조어는 이곳에서 비롯됐다.

오렌지족 야타족 신로데오족(한동안 홍대입구쪽으로 갔다 돌아온 부류)에 이어 노블레스족(IMF체제 때도 타격을 안 입은 계층)이란 말이 생긴 곳도,재즈바와 퓨전음식점,수입의류 직영매장이 가장 먼저 들어선 곳도 바로 이 지역이다.

지난해부터는 ''중고라도 유명브랜드가 좋다''는 젊은층과 ''말썽쟁이 자식보다 개가 낫다''며 애완견을 찾는 중년들이 몰리면서 해외유명브랜드 중고품숍과 애견센터가 급증, 유행중심지임을 입증하더니 갑작스레 역술원까지 늘어났다.

이곳 역술원은 종래의 점집과 달리 컴퓨터로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역술주제 인터넷방송국을 운영하는 등 벤처기업의 형태를 띤다.

첨단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이곳에 이처럼 무속밸리가 조성된 것은 점집을 찾는 사람이 자녀의 진학, 남편의 사업 내지 여자관계에 관해 묻던 주부들에서 유학등 장래나 취직 주식투자 궁합을 알아보려는 젊은이들로 넓어진 때문이라고 한다.

신흥역술인들이 옷가게와 피부관리실 등 여성들이 몰리는 지역이라는 데 착안한 결과라는 시각도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이 무속밸리를 근처 명품매장 미용실등과 연계시키는 패키지관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미국의 여성지들도 이달의 운세를 연재하는 만큼 혹 관광객들에게 관심을 모을수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 송정숙씨는 최근 동유럽여행기에서 자연과 유적의 황홀한 아름다움과 공연문화의 풍성함에 감탄하는 한편 내놓을 것 없는 우리 처지에 한숨지었다.

로마의 경우 소매치기천국에 외국인 관광버스의 시내투어를 제한하는데도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어떻게든 볼거리를 만들려는 노력의 일단을 인정한다 해도 이런 관광코스가 외국인은 찾지 않고 불확실한 미래를 자신의 의지로 헤쳐나가기보다 운이나 팔자에 맡기려는 나약한 젊은이들만 모여드는 동네로 만드는 건 아닌지 의문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