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30분쯤 후 한적한 밤거리를 달리는 차 안에서 진성호는 자신이 계획한 정동현에 대한 복수가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섰다.

뚜렷한 근거가 있어서라기보다 스포츠 커트를 한 그 청년이 왠지 모르게 정의감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정의감이란 이상하게도 교육수준과 사회적 지위와는 반비례하고 있는 현실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자는 지금쯤 정동현의 x대가리를 분명히 치명적인 사회악을 끼치는 흉기로 착각하고 있을 것이고,그러한 흉기를 사회에서 영원히 제거하는 것만이 자신에게 일을 맡긴 사람에 대한 마땅한 의리라고 굳게 믿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성호는 차를 몰면서 킬킬거리고 웃었다.

의리라는 게 이기심에 쫓겨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시대에 그래도 의리라는 것을 찾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깡패세계라고 자신이 무의식 속에서나마 믿고 있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정치인?

그가 경험한 정치인들은 진정한 의리란 자신의 무덤을 파는 도구라고 여기고.

기업인?

철저히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의리란 지저분한 위선에 불과하고.

고급관료?

그들에게 있어 의리란 받은 혜택에 대한 반대급부에 다름 아니고.

샐러리맨과 근로자?

생활에 너무 급급해 의리를 생각해볼 여유가 없고...

이 시점까지 생각해본 진성호는 아직도 의리가 중요시되는 부류가 깡패세계 이외에 또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서민계층이다.

그리고 서민들의 의리를 이용하는 자들이 바로 정치인들이다.

단돈 만 원이라도 돈을 받으면 꼭 돈 준 사람에게 표를 찍어주는 사람들이 서민이고,결국 의리를 가장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의리를 가장 무시하는 부류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셈이었다.

진성호는 차 안에서 미친 사람처럼 소리내어 웃어젖혔다.

진성호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10시 10분.

황무석이 그 문제의 수사기관의 팀장인 김 계장을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보다 이미 10분이 지나고 있었다.

김 계장이 약속을 지켰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핸드폰 전화벨이 울렸다.

황무석의 전화였다.

"만났습니까?"

진성호가 나직이 물었다.

"아닙니다. 직원들과 회식이 있어 30분쯤 늦어지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곳이 김 계장이 정한 약속장소니까요"

"최선을 다해주세요. 노고를 잊지 않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회장님께서 걱정하실 것 같아 전화드린 겁니다.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서슴지 말고 언제라도 전화하세요. 핸드폰을 열어놓고 있을 게요. 오늘밤은 잠을 자지 않을 거예요. 황 부사장이 고생하는데 제가 어떻게 잠을 잘 수 있겠어요. 그럼 수고해요"

진성호가 핸드폰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김 계장이 연락을 했다는 것으로 보아 두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은 확실했다.

이제야 진성호는 다소 안심이 되었다.

진성호는 회사로 가 회장실에서 황무석의 전화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가 모는 차는 청와대와 광화문을 지나 한강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