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대 임기 후반기를 "방탄국회"로 허송세월한 국회가 16대 국회가 개원되자 마자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개탄할 일이다.

이번 국회파행은 표면적으로는 선거부정 편파수사를 둘러싼 국정조사 문제에 대한 여야간 입장차이로 촉발됐지만 이면에는 정국주도권을 둘러싼 힘겨루기 성격이 짙다고 할 수밖에 없다.

여당으로서는 남북정상회담 열기를 토대로 총선패배를 만회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국 주도권을 장악해 차기대권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의도가 있을 법하고,야당인 한나당 입장에서는 총선승리에 도취돼 있는 사이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상황이 급변하자 정국주도권에 대한 위기감이 작용해 유화적인 태도에서 강경자세로 선회했을 법하다.

물론 정치집단이 정국주도권을 확보하려는 것 자체를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쟁보다는 민생현안 처리가 더 급한 시점이다.

지금 국회에는 추경예산안이 제출돼 있는 것은 물론이고 사상초유의 의사집단폐업 사태와 금융권 파업을 수습하기 위한 법안들이 제출돼 있다.

여기다가 공적자금 추가조성,관치금융 청산,국가채무 관리,국민연금 개혁 같은 우리 경제의 사활이 걸린 현안들도 산적해 있다.

국회에 계류돼 있는 현안 중에서도 금융주회사 설치법과 약사법 개정안 처리는 한시가 바쁜 민생법안이다.

무슨 명분을 달더라도 온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 사상 초유의 의사 집단폐업 사태와 금융파업 수습책으로 나온 약사법개정안과 금융지주회사 설치법에 대한 심의자체를 외면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정치권이 계층간 갈등을 앞장서 수습하지는 못할 망정 이를 수습하는데 방해가 돼서야 되겠는가.

또 추경문제도 마찬가지다.

국가채무가 눈덩이 처럼 불어나 있는 상황에서 추경을 편성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어려움에 처한 지방재정과 저소득층의 처지를 감안할 때 추경안 심의를 외면만 하고 있을 일은 아니다.

추경안에 문제가 있다면 국회심의 과정에서 이를 바로 잡으면 될 일이다.

아울러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가부간 결론을 빨리내야 한다.

정부조직 개편에 따른 개각설이 장기화되면서 문제해결을 얼버무리거나 뒤로미뤄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지 오래기 때문이다.

여야는 정국주도권 같은 국민들이 무관심한 정쟁으로 소일하다가 회기 막바지에 중요현안을 졸속으로 처리하는 우를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된다.

여야는 소모적인 정쟁을 중단하고 민생현안 심의에 조속히 나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