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이인환 교수가 아내가 있는 침대로 가 아내의 손을 잡아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손을 내려놓으면서 아내의 뺨에 그의 뺨을 대는 모습이 보였다.

이인환 교수가 다시 상체를 일으키며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으로 가져갔다.

눈물을 닦고 있음이 짐작되었다.

이인환 교수가 돌아서 중환자실을 나서자 진성호도 뒤따라 나섰다.

"나하고 바람도 쐴 겸 산책을 좀 할까?"

이인환 교수가 병원 현관문을 나서기 전 말했다.

진성호는 그를 뒤따라 현관문을 나섰다.

"자네한테 꼭 한 가지 부탁을 해야겠네"

병원 구내를 산책하면서 이인환 교수가 시선을 앞에 둔 채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그 여자 있지? 모델인가 뭔가 하는...여자 말이야"

진성호는 고개를 숙인 채 옆에서 걷기를 계속했다.

"남자 대 남자로 나하고 약속할 수 있겠나?"

"....."

"앞으로 절대로 만나지 않겠다고 말이야"

진성호는 어리둥절해했다.

김명희와 만나지 않는 것이 이인환 교수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말이야.정숙이가 위자료 문제로 자네한테 전화한 날 저녁 정숙이하고 장시간 얘기를 나눴어.그때 정숙이가 나한테 약속했지.자네가 그 여자를 만나지만 않는다면 재결합하겠다고 말이야"

진성호는 잠시 동안 묵묵히 걷기만 했다.

이인환 교수는 딸이 외간 남자와 불륜관계를 맺고 있음을 전혀 눈치 못 채고 있는 듯했다.

여자의 간사함이란!

진성호는 가슴에 통증을 느꼈다.

아내가 장인에게 재결합을 하겠다고 굳게 약속한 후에도 정동현과 불륜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상기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약속드리지요"

아내와의 재결합은 이 시점에서 불가능해졌지만 노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진성호는 단호하게 말했다.

"고맙네,정말 고맙네"

이인환 교수가 걸으면서 진성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자네한테 사과할 일이 있네...정숙이가 행방불명이 되었을 때 내가 오해를 했지.미안하이.그래서 어쩌다 수사관에게 테이프 얘기를 꺼냈어...그 테이프 내용 중에 주가조작에 관한 이야기가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내가 몰랐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회사에 지장이 없겠나?"

이인환 교수가 물었다.

"별 문제 아닙니다. 어떻게 해결되겠지요. 다른 회사에서도 다 하는 일입니다"

진성호가 가볍게 넘겼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리고 실제로 다른 회사에서도 하는 짓이지만 진성호는 가슴이 답답해왔다.

모든 대기업이 죄를 짓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었다가 권력자에게 잘못 보이거나 또는 거래처 등 제3자에 의해 증거가 포착되면 공정함을 국민에게 보이기 위해 마치 그런 천인공노할 일을 전혀 몰랐었다는 듯,법대로 잔인하게 처리하는 것이 정부의 정책임을 진성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마침 빈 택시가 병원 구내를 지나고 있었다.

택시를 세워 이인환 교수와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