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통한 마음으로 통신문을 발송합니다. 파업을 철회합니다.
현장으로 복귀하십시오"

외환은행 박찬일 노조위원장이 11일 오전 11시55분 한국통신 전화 동아리방 서비스에 남긴 메시지다.

이 지침에 따라 조합원들은 영업장으로 발길을 돌렸고 은행은 정상영업에 들어갔다.

그후 박 위원장은 외부와의 연락을 두절했다.

노조위원장으로서의 개인적인 고뇌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날 기업은행 김정태 노조위원장도 "총파업을 포기한다"며 노조원들에게 업무복귀 명령을 내렸다.

그는 "최종 잔류인원이 극소수에 불과하다"며 파업 철회 이유를 밝혔다.

또 "지도부는 금융산업노조의 지침에 의거해 계속 파업을 수행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지도부 행동지침에 따라준 조합원들에게 감사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금융노조가 파업에 들어간 첫날,파업을 철회하는 은행들이 늘어났다.

이들 은행 노조가 파업을 철회한데엔 노조원들의 이탈로 사실상 파업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현실론이 깔려 있었다.

여기엔 "시장"의 압력이 크게 작용했다.

파업은행에서 예금이 빠져나가 비파업 은행으로 대거 옮겨갔기 때문이다.

노조도 시장의 눈치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압력은 노조원들의 마음과 발길을 돌려놨다.

노조위원장도 명분에 얽매이지 않고 구사의 결단을 내렸다.

은행이 살아야 노조도 존재한다는 단순한 사실이 힘을 발휘한 것이다.

이 덕택에 마주보며 달리는 기차처럼 정면충돌을 향한 외길 수순만을 밟았던 금융노조 파업사태가 극적인 타협을 이뤄냈다.

시장의 압력이 노.정의 고뇌에 찬 결단을 이끌어 파업철회란 감동의 드라마를 연출했다는 평가다.

이제 노.정 모두 불신과 상처를 털어내고 새출발의 각오로 나서야 할 때다.

정부는 투명한 개혁 청사진과 신뢰받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노조도 기업과 금융기관의 동반자 및 감시자로 역할을 정립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 저변엔 시장의 발전을 위해 개혁의 고통을 나눈다는 국민적 컨센서스가 뿌리내려야 한다.

"세계경제가 악화될 경우 한국은 국제금융시장의 신뢰를 다시 잃고 제 2의 경제위기에 처할 수 있다"(아시아위크 7월14일자)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때다.

유병연 경제부 기자 yooby@ 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