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 < 한양대 경영학 교수 >

"변하지 않으면 다같이 죽는다"는 명제에 동의하면서도 금융노조가 파업에 돌입했다.

이들에게 집단이기주의를 자제하고 국가 경제를 위해 참으라고 요구하기는 어렵게 보인다.

은행원 3분의1이 IMF를 겪으면서 직장을 잃었다.

정부안대로 제2차 구조조정이 실행되면 또 감원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지속적으로 "더 이상의 은행 퇴출은 없다"고 천명해 왔다.

그런 터에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소속 직장이 없어지는"상황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힘으로 밀어 부치면 현상유지는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당연하다.

금융노조의 입장에서는 "잃을 것이 없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은행 퇴출도 없고 <>금융시장 안정도 유지하고 <>구조조정도 하겠다는 어려운 목적을 세우고 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금융산업의 경쟁력 확보가 시급한 시점에서 나름대로 잘 하자는 의미의 대안들을 제시하는 데도 불구하고 자기 밥그릇만 지키려는 노조원들의 행위가 불만스러울 것이다.

문서상으론 "자율"을 앞세운다.

하지만 답답한 마음에 책임지지 않는 전화통화로 "땜질식 간섭"을 반복,명분있는 조치가 있다 하더라도 "관치금융"이란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상황을 초래한 데는 정부측 잘못이 더 크다.

즉 "더 이상의 은행 퇴출은 없다"며 정부가 모든 은행을 껴안고 가려는 기본정책이 문제의 시발점이다.

은행의 경쟁력 제고란 정부의 지휘.감독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과거 40여년 정부 간섭의 결과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경쟁력이란 보호막없는 시장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자만이 갖게 되는 고귀한 자산이다.

"치열한 경쟁"이라면 경쟁에 실패하는 자의 발생은 피할 수 없다.

이는 경쟁의 긍정적 효과인 "경쟁력"을 얻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하는 투자비용이다.

잘못해도 퇴출이 되지 않을 현재의 정책하에서 왜 경쟁에 참여하고 목숨을 걸고 뛰겠는가.

정부의 첫번째 할 일은 대상기관들을 경쟁상황으로 내몰고 그 경쟁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지금처럼 정부가 더 이상의 은행퇴출은 없고 어떻게 하든 모두 안고 가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환경에선 경쟁은 없다.

금융산업의 경쟁력 확보가 목적이라면 그에 걸맞은 정책수단을 설정해야 한다.

우리가 누누히 이야기해온 "자율과 경쟁을 통한 책임경영체제의 확립이 경쟁력제고 방안의 유일한 길"이다.

현재 논쟁의 중심에 있는 독자경영,업무제휴,합병,금융지주회사 등에 관해서는 무엇이라도 좋으니 선택할 수 있는 무기는 각자가 선택하게 해주어야 한다.

또 주어진 수단이 충분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뛰지 않아 뒤쳐지는 부실은행에 대해선 엄격하고 투명한 기준에 의해 틀림없이 퇴출된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잘못하면 죽는다"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하에서 금융회사간 경쟁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가 바라는 국제 경쟁력의 달성이 가능해 질 것이다.

금융불안을 피하겠다는 단기적인 목표 추구는 모두를 죽이는 결과를 초래 한다.

이제는 모두를 위해 부실은행을 솎아내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미 투자된 공적자금의 회수를 위해 부실은행을 끌고 가려는 정책은 은행측의 필사적인 생존노력이 전제되지 않는 한 결국 실패할 것이다.

앞으로 더 요구될 수 있는 공적 자금을 최소화하고 금융권의 자생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살리는 정책"보다는 "죽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경쟁에 실패한 은행의 퇴출에 따르는 금융시장의 불안을 최소화하는 정책은 따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자율경영과 퇴출원칙의 시행을 전제로 하여 기존 은행의 자본금 확충,예금보호제도와 BIS 기준의 한시적 수정이나,한국은행의 최종 대부자 기능의 최대한 활용 등의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부분적으로 죽는 것이 전체를 건강하게 살리는 길"이다.

투명한 퇴출기준을 정하고 퇴출에 따른 부작용에 대비한 보완책을 마련한 뒤 은행과 조직원이라는 시장을 믿고 전화선을 끊고 물러나 있기를 고대한다.

daeskim@ nets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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